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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여백(餘白)을 가득채운/저 숨가픈 날갯짓,/꿈꾸는 세상(世上)은/아직도 아득한데/바람이/키운 씨앗들/눈꽃으로 피어난다.//무위(無爲)로 뿌려놓은/수많은 아우성,/별빛에 씻기우다/꽃등에 맺힌 이슬은/어쩌다/서럽게 흘린/눈물인 줄 알았다.//세월(歲月)뿐인 산등성이/적막(寂寞)도 인연(因緣)이니/덩실덩실 춤추고/허공을 걷노라면/무심한/가을 노을도/너털 웃음 터뜨린다.’한 계절 아름다운 채색(彩色)과 향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미나 모란, 국화 등은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애지중지하며 가꾸어진다. 그에 비해 억새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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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해 묵은 언어를 빌리자면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해는 짧고 길은 멉니다.어찌 보면 인생이란 자신의 짧은 얘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막이 내리기 전까지는 쓰다 남은 얘기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 인생은 너무도 안타깝고 허무한 것이 사실입니다.이제는 그 허무 속에서 자신의 풍류를 즐기며 노을을 보는 것도 익숙해졌습니다.또 마지막 노을이 왜 그리도 붉게 타는지 알 만할 것 같습니다. 또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인연이고 그 인연이 노래로 남기를 희망합니다.좀 더 붙이자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아들과 며느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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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응모작 109편은 가난했던 가족사, 고생했던 부모님 회상, 그리운 고향 이야기, 잊지 못할 사람, 늦은 배움의 즐거움, 경험담 등 다양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작품들이었다. 이중 4작품을 골랐다. 곧 ‘왕 언니 나가신다’, ‘호루라기 부는 사나이’, ‘동사지기 할배’, ‘억새의 노래’ 다.‘왕 언니 나가신다’는 50 나이에 늦깎이로 같은 과의 젊은 학생들과의 허물없이 어울려 생활 했던 이야기로, 졸업한 후에도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게 고마워, 16년 전 학창시절의 독수리 7형제의 일화를 생각하며 기껍게 참여하고 온다는 내용이다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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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짧아진 가을 해뉘엿뉘엿 서산에 숨어들고땅거미 어둠 품으며 내려앉으니온종일 분주하던 저잣거리는좌판을 거두고 철시를 서두른다기억자 허리 억지로 반쯤 펴며통증을 뿜어내는 할머니 신호에즐비하게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웅크린 채 기다리던 리어카는지나치며 건네는 뾰족한 시선에 멍들어싱싱함을 부끄러움과 좌절로 맞바꾼 물건들을 싣는다소박한 방석 하나에황제의 가마가 부럽지 않은 듯그제야 두 다리를 펴보면서 안도하는할머니를 리어카 뒷자리에 태우고오가는 인파 속에 묻혀가는 할아버지그 뒷모습 따라가는 그림자에고된 일상 한 줌 고스란히 흘리며어둠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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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아! 내게도 이런 행운이 오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가슴 쿵쾅거리며 심박동이 빨라지는 기쁨으로 마치 먼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나이 들어 은퇴를 하고 이제 그만 좀 쉬어야 한다는 말들이 처음에는 큰 위로로 들렸지만 6개월, 일 년이 지나면서 삶은 메말라지고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그래서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는데, 어느 날 문득 취미로 쓴 글이지만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져, 수없는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이번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이 영광은 더 겸손함으로 진솔한 글을 짓기 위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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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심사위원 정연덕 시인28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준 작품(387편)을 숙독하면서 느낀 점은 난해하거나 미숙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 그래도 성숙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띄어서 다행이었다.끝까지 선자의 손에 남아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 김난수의 ‘봉안담’과 최현숙의 ‘바다에 비가 옵니다’ 그리고, 이재곤의 ‘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이란 시이다.김난수의 ‘봉안담’이라는 시에서 “영평사 야외 납골당 황련궁 2열 22호” 이곳은 내가 죽어서 들어갈 나의 봉안담, “내 죽음의 집이다”면서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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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너희 아빠랑 헤어지기로 했어.”‘너희’ 아빠라고 했다. 누리는 엄마가 한 말의 의미보다도 그 단어 자체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무슨 얘기라도 안 해?”엄마는 조금 초조해 보였다. 누리는 그런 엄마를 힐끗 바라봤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아빠가 두 달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리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밥알 같지 않은 밥알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렸다. 어차피 나에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아빠는.누리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빠가 누리에게 남긴 유일한 것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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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인생의 많은 일이 우연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평생 제가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작년 여름부터 갑자기 동화에 빠져들더니, 이렇게 영예로운 신인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된 걸 보면 말이지요.어느 책에서인가 그런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동화란, 양질의 신선한 재료를 구해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요. 심오하고도 찬란한 이 일에 운명처럼 한 걸음 더 다가선 이 순간이 꿈만 같습니다.제 어린 시절 동화라는 요리를 마음껏 음미하게 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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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아픈 가정이야기 많아...꿈과 희망 주는 따뜻한 시선”해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설레면서 기다리는 일이 있다. 새로운 신인작가의 탄생이다.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취업에 밀려 국문과와 철학과가 폐과돼 인문학이 죽어가고, 순수예술이 외면 받는 시대에 돈이 되지 않는 작가에 대한 꿈을 갖고 매년 신인문학상에 도전하는 응모자들을 보면 그래서 눈물이 나게 고맙다.올해도 코비드를 견디면서 작품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한다.응모글을 읽다보면 그 해의 유행패턴이 있는 것 같다. 올 동화부문 응모작 가운데는 유독 아픈 가정이야기가 많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1.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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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존엄 케어’라고 쓰인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병원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긴 복도에 배어 있었다. 날이 차가워지면서 환자는 늘어났고 냄새는 더했다. 간병인이 방향제를 걸고 쑥을 피워도 일시적일 뿐이었다. 방치된 사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노인의 냄새였다. 오래된 체액의 냄새며 낡은 장기의 냄새였다.닥터 뚜렛은 현관에서 마주친 원무과장에게 머리를 까딱하고는 곧장 진료실로 향했다. 그는 평소처럼 창을 활짝 연 후 컴퓨터 전원을 켰다.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발목이 드러나는 갈색 바지와 베이지색 피케셔츠가 꽤 도시적이다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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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밤이면 누워서 소설을 읽는 때가 있었습니다. 울고 웃는 캐릭터를 가만가만 따라가는 저는 성실한 독자였습니다. 행간에 스며든 작가의 사유마다 고개를 끄덕였고 멋진 비유 앞에서는 밑줄을 그었습니다. 진실을 꿰뚫는 그들의 통찰력과 제각각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환호했습니다. 마음 한쪽에 새겨진 문장들은 종종 저를 자극하며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물어왔습니다.“인생은 짧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식으로 살아갈 생각이야. 그렇게 살아주었으면 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기 오스본의 소설 『유언』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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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일상의 다양한 삶에서, 남이 지나쳐 보는 것을 자세히 보고 찾지 못하는 의미를 찾아, 성찰과 재구성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면, 독자가 재미와 공감을 느끼고 어떤 의미를 깨닫게 하느냐 하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심사자에게 넘어온 작품 32편 가운데, 이러한 보편적인 능력을 갖췄다고 보이는 작품 3편을 가려냈다.‘암병동의 하루(서기주)’는 암병동의 일상을 통해 암환자와 간병인들의 투병과정을 소상하게 그려냈다. 문장도 원만한 편이나, 기복 없는 평면구성으로 독자를 긴장시킬 만한 요소가 없고, 시창작에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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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물이 펄펄 끓는다. 그저 멍하니 주전자를 바라본다. 부글부글하던 주전자는 이내 뚜껑을 들썩인다. 불은 노랗게, 파랗게, 빨갛게 시시때때로 변하며 물이 다 끓었음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다. 굉음을 내며 금방이라도 뭔가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한참 바라보다 나는 힘없이 보리차 티백 하나를 주전자에 넣었다. 터덜터덜 소파로 가 앉은 나는 생각에 잠긴다. 영채가 태어난 뒤로는 한 시도 고요할 틈이 없던 우리 집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독이 소름 끼치도록 밉다. 눈이 제 아빠를 닮아 서글서글하고, 눈동자는 나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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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이슬이 데려온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내일 또 쏟아져 내릴 빛이건만 오늘은 폭설이다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파란 물감을 품은 호수다작년까지의 눈가 잔주름은눈치 없이 양반다리 틀고 앉았고오늘따라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다반 백년을 담은 얼굴,분으로 주름은 덮지 못해도손만 잡고 보냈던 그 날밤 추억으로양 볼이 자줏빛 국화꽃이다저만치 그가 온다볼 빨간 낙엽을 들고....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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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글은 기다림입니다. 소재가 생각나기를, 문장이 이어지기를,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퇴근 후 밤늦도록 글을 쓰고 있으면 가끔 왜 나는 이토록 불확실한 무언가에 매달려, 기다리고만 있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내 골똘해집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글을 쓰는 일만이 내 자신이 확실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요. 이 속에서 점점 나는 확실해집니다. 글은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자체입니다. 물결처럼 일렁였던 무수한 일과 사람들, 그리고 사건은 글 안에서 굽어집니다. 항해를 나간 선장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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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지구 곳곳을 뒤덮은 재앙으로 모두 힘든 올해입니다.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경쾌한 봄비 소리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야했고,나뭇잎을 흔들던 시원한 여름 바람도 바람이 잠든 후 조용히 혼자 느껴야 했고,아파트 사이를 가로질러 치솟다가 살포시 하늘 가득 내리는 첫눈도 복면을 쓰고혼자 감상하는 청승을 떨어야 했습니다.덕분에 존경하는, 좋아하는 시인, 작가님들의 작품을 그 어느 해보다 많이 접할 수는 있었습니다.내 생애 가장 큰 재앙으로 우울한 나날에 한 줄기 빛처럼 날아든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소식은 신의 축복입니다.왜 나만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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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응모작 121편엔 가족사, 유년시절의 친구들, 그 지방의 특수어, 자식사랑, 코로나19 이야기 등 등 다양했다.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수필의 기본기를 갖춘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일상 신변잡기류의 글이 눈에 띄어 이들을 먼저 제외하고 숙독을 거쳐 이중 최종심으로 3편을 골랐다.그 중 하나가 ‘도덕산 바우’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의 바위를 ‘큰 바위 얼굴’에 비유한 것으로, 나중에 제일 잘된 진구에게 이 이름을 붙여주자 하고 그 계까지 만들었다. 이들은 각각 고향의 마을을 떠났고 석수라는 친구만 마을을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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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27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367편)들을 숙독하고 볼 때 해를 더할수록 난해하거나 미숙한 작품들이 줄어들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관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삽한 작품들이 발견되고 있다.선자의 손에 남아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김태춘의 「빌딩 타는 거미」, 홍영수의 「대흥사 천년 숲길」, 김준태의 「바지랑대」, 최미영의 「첫사랑」이란 작품이다.김태춘은 「빌딩 타는 거미」에서 옥상은 날기 좋은 곳, 죽기 좋은 곳이라 했다. 그만큼 운수와 의지의 삶이다.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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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입을 꼭 다물고 미혜가 제일 먼저 교문을 나옵니다.새침한 모습으로 버스에 올라 두 번째 줄 우측 창가에 앉습니다.노란버스는 그 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합니다.미혜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그런데 노란버스가 싫어하는 현우가 미혜를 좋아합니다.다행히도 현우가 미혜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노란버스 생각에는 미혜가 현우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합니다.이어 은지가 눈웃음을 보이며 버스에 올라 미혜 옆에 앉습니다.은지도 참 예쁩니다. 은지는 미혜와 단짝으로 바른생활 어린이입니다.노란버스는 은지도 좋아합니다.미혜와 은지가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20.12.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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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동화를 쓰는 내내, 거리에 나서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노란버스 뿐이었습니다.반대 차선에서 내게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노란버스, 엉덩이를 들썩이며 안전하게 따라오라고 앞서가는 노란버스,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는 차도, 신호 대기하는 차도 모두 노란버스입니다.한없이 귀여운 아가들, 사랑스런 꿈나무들을 태우고 노란버스가 달립니다.뉴스에서 또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어린이 교통사고 소식을 접할 때면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합니다. 그리고 화가 납니다.세상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노란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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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20.12.22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