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푸른 말들이 물들이고 지나가는 새벽

질주하는 속력은 몇 개의 바람을 가르고

나는 이백만 년을 견딘 지층으로 압축되고

곪아터지는 몇 겹의 긴 편지를 읽는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요 헤어졌던가요

빳빳한 말의 귀두는 사정을 해야 할 곳을 잃어

젖꼭지를 가만히 만지던 추억을 방사한다

 

어제 그는 망가진 자궁을 들어냈다

집을 거쳐 간 잡것에 대한 회한을

(참을 수 없는 흠집이거나 희망인)

봉합하고 새로운 집을 짓는 거미처럼

허공에 살랑거리는 바람을 채집하는

노동의 결구에 대하여 생각한다

병든 말의 환부를 투명하게 닦으며

주먹만한 宮이 끝내 허물어지면

집은 완성되리라 사랑이여

죽음이란 아름다운 해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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