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공기소총 입사 동메달… 개인 첫 패럴림픽 메달
예선에선 세계 신기록 경신… “남은 3종목서 금 도전”
2002년 낙상사고로 하지마비…사격으로 다시 일어나

<대한장애인체육회>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한국 장애인 사격의 간판’ 박진호(44·청주시청)가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사격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겼다. 자신의 첫 패럴림픽 메달이기도 하다.

박진호는 30일 일본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도쿄 패럴림픽 사격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SH1 결선에서 224.5점을 쏴 둥차오(246.4점·중국), 안드리 도로셴코(245.1점·우크라이나)에 이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패럴림픽 첫 출전이던 2016 리우 대회에서 메달이 없었던 박진호는 이번 동메달이 인생 첫 패럴림픽 메달이다. 그는 “그동안 다른 대회에선 메달이 다 나왔는데 패럴림픽만 없었다. 이제 (동메달이) 나왔으니 색깔을 슬슬 바꿔봐야겠다”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값진 동메달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총 60발을 쏘는 예선에서 631.3점으로 세계기록과 패럴림픽 기록을 동시에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결선에선 탈락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총 24발을 쏘는 결선은 11번째 총알부터 2발마다 최저점 선수가 1명씩 탈락하는 ‘서든데스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첫 10발에서 100.8점으로 8명 중 7위에 그쳤던 것. 이후 흐름을 찾은 그는 19번째 발에서 선두로 올라섰다가 21번째 발에서 9.4점을 쏘며 순위가 다소 떨어졌다.


박진호는 “다 따라가니까 욕심이라는 게 생겼다. 그래서 실수가 나왔다”며 “좋은 경험이었다. 남은 경기가 있으니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진호는 서울 출신으로 문일고와 수원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운동신경으로 여러 스포츠를 즐겼던 그는 체대에 다니며 운동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가을 낙상으로 척추손상을 입어 하지가 마비됐다. 수년 간 병원신세를 지며 재활에 나섰지만, 다시는 걸을 수 없었다. 아득한 현실에 눈앞이 캄캄했다. 생활을 걱정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려고도 했다.

그를 다시 일어나게 한 것은 사격이었다. 그는 휠체어를 탄 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고, 큰누나 박경미씨의 도움을 받아 2004년 사격에 입문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장애인 사격선수로 전향했지만, 타고난 운동신경과 집중력 덕에 입문 1년 만에 국내 최고의 사격명문 팀인 청주시청의 입단 제의를 받았다.

청주시청 입단 후 국내는 물론 세계 대회를 호령했다. 2009년 전국장애인체전 5관왕을 비롯해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3관왕(은메달 2개)에 올랐고, 독일 IPC세계사격선수권에서도 금메달 4개(동메달 1개)를 휩쓸었다. 한국사격의 리우 패럴림픽 출전권 확보에 큰 공을 세운 그는 ‘장애인 사격의 진종호’로 불리기 시작했다.

리우 대회에서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그는 다시 힘을 냈다. 2018년 청주IPC세계사격선수권에서 동메달(10m 공기소총 복사)에 이어 2019 직지배 전국장애인사격대회에서 5관왕에 올랐다. 패럴림픽을 준비하며 집(청주시 청원구 내수읍)과 훈련장만 오가면서 훈련에 매진한 그에게 아내의 내조는 가장 큰 힘이 됐다.

박진호는 9월 1일 혼성 10m 공기소총 복사, 3일 50m 소총 3자세, 5일 혼성 50m 소총 복사에서 추가 메달을 노린다.

“사격은 정직한 종목이다. 내 기량과 실력에 따라 공평한 결과가 나온다”는 박진호는 “남은 세 종목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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