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교육청 유아특수복지과장

박을석 충북교육청 유아특수복지과장

[동양일보]올해 어린이날은 여러 가지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이 시작된 지 100년을 맞은 해라는 점이다.

어린이날에 맞춰 우리 교육청에서도 ‘봄꽃처럼 피어난 행복한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했다. 수업활동, 학생자치 활동, 홍보 및 행사 활동 등 여러 분야의 지원과 안내가 알차고 뜻깊었다.

나도 유관 부서장으로서 유치원 관련 행사와 어린이 존중 관련 챌린지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참여했다. 행정기관에 근무하면서 어린이날을 다소 멀게 느꼈었는데, 올해는 달랐다.

어린이날 행사 추진 중에 있었던 일. 꼼꼼한 어느 교감 선생님의 질문이 들어왔다. 어린이날 100주년 또는 100회 중 어느 것이 옳은 표기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분은 국립국어원의 질의-답변 사례, 1923년 첫 어린이날 행사 및 각각의 표기 사례까지 들어서 문의를 해주셨다. 덕분에 우리 부서에서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국립국어원은 어떤 사업을 시행한 지 몇 년 또는 몇 주년은 시행한 해 다음 해부터 1년 또는 1주년이 된다고 답하고 있다. 몇 주년은 만 나이와 같은 뜻으로 보아 무방하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의 답변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은 숙고할 만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1922년 방정환 선생이 이끄는 천도교 서울지부 소년회에서 어린이날을 선포했고, 1923년에 조선소년운동협회를 만들어서 그해 5월 1일을 다시 제1회 어린이날로 정했다.

어린이날을 선포한 해(1922년)를 기점으로 하면 올해가 100주년이고 공식적으로 행사를 연 해(1923년)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100회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고려대 방정환 선생 관련 학술행사 폐막사 제목도 ‘대한민국 어린이날 100회 100주년 기쁨을 함께’였다.

매사 정확성을 고려하는 측면뿐 아니라, 호명에 따라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니,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소중하다. 100주년 어린이날이라고 부르면 선포에 초점을 둔 것이고 100회 어린이날이라고 부르면 좀 더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행사에 방점이 찍힌다.

현장의 교감 선생님 덕분에, 우리 과 장학사님 한 분 덕분에 지나간 어린이날의 역사 100년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되었다. 아울러 ‘어린이날 100주년’ 또는 ‘어린이날 100회’와 관련된 것들을 살피고 어떻게 호명할 것이냐를 생각해 보면서 문득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작품도 떠올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존재한다고 해서 다 의미 있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저 희미한 ‘몸짓’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수두룩하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꽃)로 다가온다. 존재의 특성(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으로 존재를 불러야 한다…….

이름을 불러주느냐, 그것도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주느냐는 문제는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일은 소외의 영역이라면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 일은 억압과 차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 될 수 있으면 ‘야, 너, 쟤……’ 대신에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었다. 시상식 때 ‘아무개 외’ 대신에 상을 받는 모든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려고 노력했다. 시설 보호 아동의 자립을 지원하는 통장에 꾸준히 후원을 하고 있다… 등등. 나름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아직도 부족하다.

소외된 존재들, 차별받는 존재들을 의식의 중심으로, 모두의 영역으로 호명해 내는 일은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고 인권사회를 실현하는 첫걸음일 수도 있다.

그나저나 지난 대선에서 교육은 잊혀진 영역이었고 인수위원회도 다르지 않았다.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유감을 표한다. 교육이 백년지대계일진대…….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