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피아니스트들의 손가락을 희화화한 그림
피아니스트들의 손가락을 희화화한 그림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2022년 6월, 제 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8세 소년인 한국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역대 최연소로 1등을 거머쥐게 된다. 준결선에서 고난이도로 불리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12곡을 모두 쳐낸 그가 결선 무대에서 선택한 곡은 일명 ‘피아니스트의 무덤’으로 불리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한 이 연주는 피아노곡의 난이도에 있어 가히 1위에 오를만한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1873~1943)는 마음을 울리는 유수의 작품을 작곡한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아니스트들의 우상으로 손꼽히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퇴역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라흐마니노프는 유명음악가였던 사촌의 눈에 띄어 음악원에 입학하게 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외부의 평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의 나이 24세에 발표한 ‘교향곡 1번(1887)’에 대해 혹평을 받고는 3여년의 시간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당시 정신과 치료를 담당했던 니콜라이 달은 그에게 ‘자기암시기법치료’를 시행하였는데 그에게 최면을 걸고 매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잘 할거에요. 당신은 곧 위대한 협주곡을 만들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될거에요.” 치료의 효과였을까?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인생 대작인 ‘피아노협주곡 2번(1901)’을 작곡하여 생애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되고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의사 니콜라이 달에게 이 곡을 헌정한다.

한국인이 사랑한 클래식 1위에 오르기도 했던 ‘피아노협주곡 2번’은 러시아적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교회의 종소리’를 연상하며 작곡했다는 1악장의 시작은 이내 잔잔히 물결치는 듯한 피아노 연주로 이어지며 그 위로 가슴 저릿한 오케스트라의 주제 선율이 흘러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테마의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던 이 곡은 음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산함과 로맨틱함 그 사이를 오고가며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이어지는 2악장에서는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와 목관악기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을 수 있다. 2악장은 영화, CF, 팝송 등 다양하게 삽입되어 사용됨으로써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마지막 3악장은 앞의 악장들과는 달리 빠르고 경쾌한 느낌의 음악으로 특히 도입부에 나타나는 강렬하고 화려한 피아노연주는 오케스트라의 합주도 이겨낼 기세로 등장하여 감성적인 피아노 선율로 이어진다. 이렇게 피아노의 기법과 감성적인 터치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이러한 연유로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강철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나는 눈물 없이는 전지전능한 그의 존재감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라흐마니노프의 절친한 친구였던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의 말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키 198cm에 긴 팔다리를 가진 거대한 체형이었고, 그의 손가락은 다 펼치면 30cm에 달할 만큼 매우 길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절친 호프만을 위해 ‘피아노협주곡 3번’을 작곡하는데 당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호프만은 이 곡의 난이도를 보고는 “당신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며 연주를 사양했다고 한다. ‘피아노협주곡 2번’의 큰 성공 뒤에 온 부담 탓이었는지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에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모든 기교를 포함했다고 한다.

병적으로 피아노에 집착한 천재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샤인(1997)>에서 주인공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선택하자 지도교수는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곡을 칠 수 없다”며 만류한다. 이에 헬프갓은 “나는 충분히 미쳤어요. 그렇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듣고는 나의 기억 속 한 장면, 영화<샤인>이 떠올랐다. 사실 일반인이 소화하기 힘든 악마의 기교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경우 손가락이 길어지는 병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불가능에 도전하여 이를 완성해내는 위대한 음악가들에게 깊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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