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서원대학교 객원교수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서원대 객원교수

[동양일보]인쇄는 지식정보의 발원지로써 문화발달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전파하고, 계승ㆍ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한 나라의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주역이며, 문화와 교육수준을 나타내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쇄가 있는 곳에 문화가 있고, 인쇄는 문화를 탄생시키는 산모(産母)라고도 한다. 지식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했고,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쇄가 필요했다. 인쇄는 목판 인쇄부터 시작하여 활자 인쇄로 발전하였다. 목판의 경우 한번 판을 만들어 놓으면 같은 내용의 책은 계속적으로 인쇄가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여러 종류의 책을 만들고자 할 경우에는 일일이 판을 다시 만들어야만 한다. 이 경우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담도 따랐다. 따라서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종류의 책을 간행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에 다종의 책을 간행하기에 편리한 활자 인쇄로 전환된 것이다.

 

청주는 고려대장경 간행의 발원지이며,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보물 제1408호, 약칭 금강경),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약칭 직지), 신간대자 명심보감(新刊大字 明心寶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65호, 약칭 명심보감) 등을 간행한 도시이다. 특히, 직지는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쇄문화의 전파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것을 인정받아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OW)에 등재되었다.

고려시대 대장경은 두 번에 걸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첫 번째 새긴 것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1011~1087)이라 하고, 두 번째 간행한 것을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1236~1251)이라 한다. 초조대장경은 1010년 거란의 침입으로 현종이 공주와 전주를 거쳐 나주까지 피난을 갔다가 거란의 군사가 물러감에 따라 환도하면서 1011년 2월 13일 청주에 도착하여 행궁에 머물게 된다. 이 때 석가모니가 입적한 2월 15일을 맞아 청주에서 연등회를 베풀었는데, 여기에서 현종은 대장경을 목판으로 새길 것을 발원하게 된다. 물론 대장경의 판각은 당시 수도인 개경에서 이루어졌다. 이 대장경은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었다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몽골의 침입으로 1232년에 강화도로 천도하고, 1236년부터 16년간에 걸쳐 다시 대장경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따라서 청주는 초조대장경 간행의 발원지이며, 또한 2월 15일에 청주에서 개최했던 연등회를 계속적으로 거행하게 되는 연등회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1305(고려 충렬왕 31)년에는 육구거사(六具居士) 박지요(朴知遙) 등이 발원하여 청주목 원흥사(元興社)에서 금강경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은 현재 청주에서 간행된 인쇄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간행처인 원흥사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다만 원흥이 방죽 근처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1377(고려 우왕 3)년에 석찬과 달잠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청주목외 흥덕사에서는 직지를 금속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책의 하권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백운화상이 부처와 조사(선사)들이 깨달음을 직접 가리켜 보인 중요한 절목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불교계에서는 내용적인 면에서 고려대장경의 축소판으로 선불교 최고의 교과서로 평가하고 있다. 둘째로 서지학적인 측면에서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책으로, 대한민국이 금속활자 발명국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로 책을 간행했다는 기록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1239년 이전)와 상정예문(詳定禮文, 1234~1241년)이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주자(鑄字), 즉,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만 전할뿐 현재 인쇄본이 전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직지는 인류의 지식정보 전달매체인 금속활자 발명의 대명사이며, 시원(始原)으로써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는 것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1454(조선 단종 2)년에 청주 유학 교수관 유득화(庾得和)가 발문을 짓고, 청주목사 황보 공(皇甫 恭)과 충청도관찰사 민건(閔騫)이 목판으로 청주에서 명심보감을 처음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은 중국의 범립본(范立本)이 어린이들의 교육과 학습을 위해 유교ㆍ불교ㆍ도교를 포함한 선현들의 금언과 명구를 뽑아 1393년에 상ㆍ하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상권에 계선편(繼善編)부터 훈자편(訓子編)까지 10편 373조, 하권에 성심편(省心編)부터 부행편(婦行編)까지 10편 401조로 총 20편 774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간행 배경은 1453(단종 1)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인 황보인ㆍ김종서 등 수십 명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게 되면서 조선의 미래는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밖에 없다는 일념으로 황보 공을 중심으로 청주목에서 편찬사업을 전개한 것이다. 이 책은 1637(인조 15)년부터는 불교와 도교를 비롯하여 맹자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한 19편 246조로 1/3이 축소된 초략본으로 간행되면서 조선시대 어린이의 인격수양을 위한 교양서로 천자문 등과 함께 가장 널리 읽히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독일어 등 동양문헌 최초로 서양어로 번역되어 서구에 까지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하다.

인류의 지식 정보 전달 매체는 언어(소리나 몸짓) → 문자 → 인쇄 → 전자미디어로 발전하였다. 인류의 정보혁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금속활자 인쇄술의 등장으로 정보의 생산, 공유, 활용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후대에 전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 새로움을 창조하며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금속활자 인쇄 문화의 상징인 직지를 비롯하여 후세의 교육을 위해 명심보감을 간행한 청주의 자긍심 고취와 이를 통한 청주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 그리고 정보혁명의 강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의 IT강국 대한민국을 국가브랜드로 가꾸어 나가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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