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동양일보]사실 친구라고 할 처지도 아니에요. 그녀와 나는 열네 살이나 차이가 나거든요. 짝사랑하는 사람처럼 혼자만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야 젊은 사람과 친구 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만 그녀 생각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혼자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교육원 영어 회화반에서 글을 지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주제가 ‘친구’였습니다.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데 나는 새로운 친구가 생각나는 겁니다.

“내 글벗을 소개합니다. 그녀와 나는 열네 살 차이지만 외모로 보면 스무 살도 더 차이가 나 보일 거예요. 그녀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거든요. 그녀는 임영웅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 가수의 콘서트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쫓아다닙니다. 새로 나온 CD를 30장이나 사서 선물로 마구 돌립니다. 나는 그런 열정을 가진 그녀가 부럽습니다. 삶이 자꾸 시드럭부드럭해지니 그녀의 활력이 왜 부럽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감성이 비슷한가 봅니다. 나처럼 패션에 관심이 많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서로 권하기도 하고 가끔 선배수필가 글의 소감을 나누기도 하지요. 통찰력이나 문장력이 나보다 한 수 위니, 그녀 말을 잘 새겨듣곤 합니다. 그런 그녀와 오랫동안 친구 하고 싶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발표를 마쳤습니다. 영작이야 중학생 수준도 안 되겠지만 듣는 사람이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되는 거지요. 응원의 박수를 많이 받았어요.

외국 영화를 보면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상대편을 지칭할 땐 You로 통하잖아요. 친구를 나이로 구분 짓지 않는 문화지요. 물론 영어 회화반에서도 나이 차이가 크게 나든 적게 나든 서로 이름(영어)을 부르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원래 친구는 동갑네 끼리로 생각했지요. 한 살만 많거나 적어도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는 게 우리 정서니까요. 요즘에는 점점 서구화되어 나이 상관하지 않고 서로 친구를 맺는 추세이긴 합니다. SNS에서는 ‘인친, 카친, 페친’이라고 하며 친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 보면 그녀가 나를 희떱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선비들은 서로 뜻이 맞으면 나이를 초월하여 망년지우忘年之友로 삼고 함께 시와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서애 류성룡과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과 무의공 이순신, 이항복과 이덕형이 그 예입니다. 송시열과 윤휴는 10살 차이가 났으나 격의 없이 서로를 호나 자로 부르며 친구처럼 지냈답니다.

이러니 나이 차이 난다고 친구 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지요. 문제는 제 처신입니다. 주역의 ‘관계론’이 생각납니다. ‘응應’이지요.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합니다. 산다는 것이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니, 집이 좋은 것보다 이웃이 좋은 것이 훨씬 더 큰 복이라고 합니다. 좋은 친구와 오래 함께하기 위해 나를 더욱 낮춰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더불어 나이가 벼슬이라도 되는 양 연륜을 들먹이며 고개를 곧추세우는 어른이 되지 않으려 애를 쓰겠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사람과 친구 하고 싶은데 주책일까요. 아마도 내 욕심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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