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동양일보] “법은 만인(10,000명)에게만 평등한 게 아니고,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잖아요?” (22,9,1 국회종합정책 질의 중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의 문해력(文解力: 글을 이해하고 쓸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짐은 젊은 세대의 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국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만인(萬人)을 숫자 10,000명으로만 알고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문해력 저하 현상은 주로 젊은 층에게만 해당하는 줄 알았지만 중년층에도 상당하다는 통계가 있다. OECD 국제성인 역량조사(PIAAC)의 2016년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글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언어능력’ 이 16∼24세에서 32개국 중 4위인데 45∼54세 구간에선 평균 이하로 떨어지고 55∼65세에선 하위권으로‚ 중년의 문해력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문해력 위기’를 느껴 관련 도서를 찾는 4050 중년층이 늘어나고 출판업계 집계에 따르면 문해력 증진을 위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나가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 웹툰 작가가 사인회 개최를 준비하면서 예약 과정에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자 작가가 공지하는 글로 “예약과정 중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올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사과문을 보고 “나는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심심해서 사과문을 올렸냐?” 등 지극히 평이한 문장인데도 이해를 못하는 반응이 있었다.

안위(安危)를 잘못 쓴 경우도 기록을 찾아보면 나오는데 전직 대통령, 총리들도 대국민담화나 국경일 기념사에서 <국가 안위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을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안위(安危)를 지킨다.’ 고 하면 ‘안전과 위험을 지킨다.’ 는 뜻으로 이것은 비문(非文 : 말이 안 되는 글)이다. 이 경우 ‘안위’ 를 ‘안전’ 으로 바꾸면 된다.

2022년 7월9일 <일본의 아베 전 총리를 피격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라는 기사가 있는데 ‘피격한 용의자’라고 하면 용의자가 총을 맞은 것처럼 되어 ‘아베 전 총리를 총격한 용의자’ 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또 뉴스 시간에 한 기자는 ‘은하계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최대400억 개’ 라고 보도 했지만 ‘가장 크게’ 가 아니고 ‘가장 많게는’ 이 맞기에 ‘최다 400억 개’ 라 쓰는 것이 맞다.

이런 일은 1990년대 이후 한글 전용으로 문맹자는 거의 없어졌으나 한자를 포기함으로써 읽을 수는 있지만 이해가 안 되는 신종 문맹자가 생겼다. 따라서 적확한 언어선택이 어려워지면 고급 학문이나 기술발달에 장애가 된다.

50년 전 이런 사태를 예견한 사람이 있으니 1971년에 <국어에 대한 중대한 오해>란 소책자를 쓴 오지호(吳之湖) 화백이다. 그는 이 소책자에서 우리 국어가 겨울, 기쁨, 사람 같은 고유어(固有語)와 주로 고급 개념어가 많은 한자어(漢字語)로 구성 되어 있음으로 한자가 결코 외국어가 아니라 국어의 일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한글로써는 한자어의 발음 부호를 달 수 는 있지만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없으므로 한자의 도움을 받지 않는 국어는 언어가 아닌 소리, 또는 암호라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영어는 전 세계가 자국어 다음으로 많이 쓰는 언어가 되었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언어이다. 1066년 이후 약300년 간 프랑스 말을 하는 바이킹 후예 노르만 전사들에 의해 정복, 통치된 영국에선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 못하고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대체 되었지만 다수 영국인들은 생활어로서 영어를 계속 쓰면서 프랑스어를 받아들였다. 14∼15세기 백년전쟁을 계기로 영국 왕실과 귀족들은 프랑스어 대신 영어를 쓰기 시작했고 다시 살아 난 영어는 노르만 전사자들을 통해 받아들인 프랑스어 및 라틴어 어휘로 풍성해져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배출했으며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다. 영국인들이 한국인들처럼 프랑스어를 한자처럼 배척했다면 오늘날 영어는 2류가 되었을 것이고 영국의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낱말 가운데 70%나 되는 한자어를 활용하여 우리말을 세계적인 언어로 키우자.

‘국가는 어휘력만큼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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