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것 아닌 너도 그렇다는 마음으로 시 써
‘시인’보다 ‘시’가 남아야
작은 것에 관심 ‘풀꽃’ 국민시로 사랑받아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

 

가을이 되면서 햇빛이 순해졌다. 그 빛이 유독 더 순해 보이는 곳이 있다.

공주시 봉황로 85-12. 주차장을 지나 이곳의 비탈진 언덕을 오르면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숲 앞으로 오래된 목조가옥이 나타난다.

집 마당엔 가을볕바라기를 하는 풀꽃들이 가득하다. 고졸한 건물의 이마에 ‘공주풀꽃문학관’이란 나무현판이 걸려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제는 국민시로 사랑받는 시 ‘풀꽃’의 나태주 시인(76)의 문학세계를 위하여 공주시가 만든 문학관이다.

올해는 시인이 등단한지 50년이 되는 해, 시인이 머문 문학관을 찾아 반세기동안 천착해 온 그의 시와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등단 50년이 되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시인이 되셨는데, 감수성은 그대로인 것 같네요.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목월 선생이 추천해준지 그새 50년이 되었네요. 그땐 젊을 때라서 당연히 질퍽질퍽했지만, 요즘엔 독자들이 젊은 시절에 쓴 제 시를 ‘늙은 사람의 시’라 하고 요즘의 시를 ‘젊은 사람의 시’라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젊은 때는 온전히 자기 시가 아니고, 배워서 쓰는 남의 시였어요. 박목월을 벗어나고, 김소월을 벗어나는 연습을 하면서 저는 나이 50이 되었을 때 나태주가 되었고, 70이 다 돼서 남의 시를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사)한국시인협회장도 맡으셨지요.

“지난 4월에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한국시인협회는 57년 유치환 조지훈 시인 등이 만든, 우리나라 예술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입니다. 시인협회상을 시상하는 등 시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열면서 한국 시의 부흥을 위해 앞장서 오고 있어요. 일은 같이 일하는 팀들이 맡고, 저는 향기나는 단체가 되도록 작은 힘을 보탤 뿐입니다.”

-풀꽃문학관은 건물의 모습도, 이름도 일반문학관과 다릅니다.

“공주가 예전 충남도청소재지였기 때문에 일본집이 많았어요. 그러나 개발이 되면서 다 없어지고 유일하게 이 집이 하나 남았어요. 이 집도 앞에 담장이 쳐있고 숲속에서 썩어가던 집이었어요. 2014년 당시 제가 문화원장이었는데, 공주시에 이 집을 사서 활용하자고 제안을 했지요. 평생 시를 썼고 문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문학관으로 만들자, 그런데 문학관은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중 2012년을 기해서 많이 알려진 시 ‘풀꽃’을 넣어서 문학관을 만들자 발의를 했지요. 발의는 제가 했고, 시청에서 지원을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이 집이 재미있어요. 조용한 공간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요. 일본 무사들의 집이 그렇잖아요. 그 사람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보다 내부에서 나간사람, 내통한 사람들을 더 무서워했다고 해요. 그 소리를 듣기위해 나무마루를 놓은 거죠. 의심이 많는 사람들이죠.”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요.

“지금은 중간 단계예요. 현재는 직원 한 명만 시청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데, 공주시청에서 풀꽃문학관 지원 조례가 제정되면서 국토부 지원으로 32억짜리 새 건물을 이 뒤에다가 짓게 되었어요. 그러면 이 집은 문화재로 연수실 강의실 식으로 활용하게 될 거예요.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관장은 아니시죠.

“관장은 봉사직으로 따로 있어요. 저는 이 문학관의 소프트웨어라고 볼 수 있죠.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나태주 죽었느냐고 묻는데 저 아직 안죽었죠.(웃음)”

-코로나로 위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선생님의 시 ‘풀꽃’은 대한민국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중 하나인데요.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시는지요.

“풀꽃은 하나의 선언입니다. ‘너도 그렇다’가 선언이라는 의미지요. 지금은 코로나로 힘들지만 ‘너와 함께’ 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풀꽃’시는 2002년에 썼는데, 알려진 것은 2012년이었어요. 하나의 시가 대중들에게 들어가기 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지요. 시는 ‘그것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돼야 합니다. 시자체가 감정의 덩어리가 돼야 하지요. 요즘 시가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그것 자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그것에 대하여’ 쓰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의 화가 마크로스코는 슬픔을 슬픔자체로 그림 속에 드러냈습니다. 슬픔에 대해 그린다면 그림자체가 슬픈 것,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감동으로 전달되는 것, 마크로스코는 그것을 종교적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시는 종교적 경험까지 가야 합니다. 백제 정읍사 같은 것이 그렇지요. 그런데 오늘 날의 시는 시인들이 너무 큽니다. 시가 남아야 하는데 시가 남지 않고 시인들이 남거든요. 저는 그것을 경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되는 시를 쓰고자 노력하지요.”

-‘마당을 쓸었다. 지구 한모퉁이가 깨끗해졌다.’ 이 시 구절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시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끼는 시는 다른 사람도 아낍니다. 논어에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말이 있어요. 시진핑의 가훈은 남한테 잘 하는 일이 나한테도 잘 하는 일이다(給人方便 自己方便)라고 하지요. 이게 바로 ‘너도 그렇다’예요.”

-자전거를 타고 오셨는데 운전은 안하세요

“못해요. 면허도 없어요. 저는 큰집, 운전, 자동차, 좋은 옷, 좋은 음식엔 관심 없어요.”

-원래 작은 것을 좋아하셨나요.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이 예전엔 없었어요. 한동안 우리는 너무 가난하고, 힘들고, 배고프고, 춥게 살았기 때문에, 키우고 확장하고 증식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었지요. 그런데 어느 정도 확장이 다 된 뒤에 사람들이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 작은 것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갖기 시작한 것이죠. 제 시에 사람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이것도 시대적 흐름입니다.”

-문학관내에 책이 상당히 많아요. 얼마나 책을 내셨나요

“시집, 산문집, 동화집, 전집, 시선집 합해서 150여권정도 펴냈네요. 올해도 20권 정도 새 책이 나옵니다. 조병화 선생님이 생전에 시집을 많이 내셨는데 ‘왜 이렇게 많이 냈는가’ 물었더니 ‘불안해서’라고 답했어요. 인생은 불안한 거지요. 그런데 저는 ‘외로워서’라고 말하고 싶어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도 남은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이것이 나태주의 ‘사는 법’이란 시입니다.”

-그림을 그리시게 된 얘기도 해주세요.

“제가 본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고요. 망했을 때 그림을 만났어요. 1990년 장학사가 됐는데 4년 만에 좌천돼 시골학교로 발령을 받았어요. 교원노조 주례를 많이 서주었다가 윗분의 심기를 건드렸나봐요. 화가 나고 억울했지요. 어느 날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운동장에서 공에 차이고 밟혀 잎이 잘리고 훼손된 민들레가 꽃 한송이를 피우고 또 봉오리를 맺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그는 메모지에 훼손된 민들레를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몸이 망가졌음에도 온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보고 크게 반성을 했어요. 그래서 일어났어요. 그림을 통해서 사물을 새롭게 보는 눈을 배웠고 틈틈이 그림을 그려 그림책도 여러 권 냈지요. 요즘은 그림을 그리다보면 시가 떠오르고, 시를 쓰다보면 그림이 떠오릅니다. 소동파 말처럼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지요. 나태주 시도 시를 읽고 글이 떠오르지 않으면 시가 아니고 그림을 보고 시가 떠오르지 않으면 그림이 아닙니다.”

-편찮으셨을 때도 그림으로 일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62세가 되던 해, 교장 정년퇴임을 6개월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언제부터인가 몸이 아팠는데, 미련하게 참다가 쓸개에 생긴 돌이 내려가다가 터질 때까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쓸개즙이 내장의 모든 기관으로 번져 치사율 95%인 범발성 복막염이 되었어요. 의사가 3일을 두고 보자고 하데요. 몸전체가 염증이라 수술도 안되고 아무조치도 할 수 없다며 패혈증이 오지 않게 항생제만 투여했어요. 그렇게 15일을 중환자실에서 버텼어요. 의사가 말하길 ‘환자분은 지금 수술로도 약으로도 안되니까, 일분 일초를 아껴쓰세요. 만일 패혈증이 오면 모든 장기를 잘라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살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러면서 자생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인간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사는 게 분명합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병실로 온 뒤 저는 양팔에 주사기를 꽂은 채 매일 꽃을 보러 1층 뜰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서 풀꽃을 그렸어요. 종이도 없어서 집사람이 간호사테이블에서 얻어다준 메모지에 그렸어요. 뜨거운 5~6월 햇살아래서 그림에 몰입하다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가지요. 그러나 햇빛 속에서 내가 풀처럼 나무처럼 푸르게 돋는 느낌, 그림을 그리고 나면 해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저를 기쁘게 했어요. 집사람은 검사하러가야 한다, 약먹어야 한다며 펄펄 뛰었지만요. 그때 그린 그림들은 문학사상사에서 낸 시집에 실었어요. 제가 6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덕에 자칫 유고시집이 될 뻔한 시집이 저기 책꽂이에 있네요.”

-그림이 회복의 에너지가 되었군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기쁨으로 산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너도 그렇다는 생각. 이런 마음으로 시를 쓰니까 독자들로부터 많은 지지가 따랐어요. 요즘 네이버에서 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9~10개 스테디셀러가 검색이 돼요. 독자들로부터 받는 엄청난 축복이지요. 이건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코로나로 달라진 일상이 있다면.

“올해 예약된 강의가 많았는데, 6월부터 다 취소되었다가 9월부터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올해는 꽃을 많이 가꾸었어요. 그리고 책도 많이 봤습니다. 제 손은 지문이 없어요. 종이를 많이 만져서 그런거라네요. 도예가들에게 들어보았더니 종이를 만들 때 펄프에 고령토가 들어간다는군요. 그러니까 매일 화단의 흙을 만지고, 책을 통해 흙을 만지다보니 지문이 닳아 없어진 것이죠.”

-하루 일과는 여유로우신가요.

“강연 나가는 날은 그 일에 매달리고, 일없는 날엔 낮잠도 자고 집사람과 산책도 합니다. 잠을 많이 자요. 글을 쓰려면 9시나 10시쯤 잤다가 새벽 1시에 일어나서 4시까지 글을 써요. 그리고 다시 자지요. 아, 이 시간에 쓰는 글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에요. 시는 쓰고 싶다고 써지지 않아요. 시는 작정없이 씌어지는 글이고 산문은 계획을 하고 메모를 하고 작정하고 쓰는 글입니다. 예전엔 시가 써질 때 갖고 다니던 돈봉투에 시를 썼는데, 요즘은 핸드폰으로 대상을 정해서 이야기 하듯 시를 써서 보내요. 제가 예뻐하는 여자가 있다 그러면 그 애에게 시를 써서 보내는 거죠. 예뻐한다는 것은 관계가 좋다는 것이고, 좋다는 것은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지요. 시가 떠오를 때 작정없이 쓰면 간절해지고 간결해집니다. 간절하다는 것은 내용이고, 간결하다는 것은 형식이지요. 핸드폰에 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떠오를 때 써야 간절해지고 간결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시의 대상이 있으면 목표지향이 확실해지지요. 흐릿하지가 않습니다. 화살을 누구에게 쐈다. 그러면 확실하다. 다른 사람들도 반의반은 이해한다, 시가 너절하고 진부하고 간절하지 않으면 아무도 읽지 않아요. 감정과 감동이 나를 살리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도 살리는 것이지요.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전 좌우명이 많은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엔 명심보감에 있는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였어요.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자가 돼도 교만하지 말자는 뜻이었죠, 아이들에겐 밥상머리 잔소리로 ‘최선을 다 하라’고 했고, 나이가 들었을 땐 ‘이 세상 첫날처럼 하루를 맞이하고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정리하며 살자’로 정했어요. 그 뒤로는 ‘밥 안 얻어먹고 욕 안 얻어먹자’ 그래서 누가 밥먹자면 싫어합니다. 마음에 찌거끼가 남는 찬조금도 받지 않으려 하고요. 나이가 많아서 홀가분해지고 싶거든요. 최근엔 또 바뀌었는데 ‘요구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는다’입니다. 살면서 남에게 요구하고 거절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지요. 그러나 저는 가능하면 요구도 하지 않고 거절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사실 거절이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러나 제 시간만은 확실하게 거절합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없습니다. 많이 해서가 아니고 뭘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영혼을 울리고 마음을 치유하는 시를 계속 써주십시오.

오르간으로 ‘풀꽃’을 연주하는 나태주 시인.
오르간으로 ‘풀꽃’을 연주하는 나태주 시인.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