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아

[동양일보]‘존엄 케어’라고 쓰인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병원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긴 복도에 배어 있었다. 날이 차가워지면서 환자는 늘어났고 냄새는 더했다. 간병인이 방향제를 걸고 쑥을 피워도 일시적일 뿐이었다. 방치된 사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노인의 냄새였다. 오래된 체액의 냄새며 낡은 장기의 냄새였다.

닥터 뚜렛은 현관에서 마주친 원무과장에게 머리를 까딱하고는 곧장 진료실로 향했다. 그는 평소처럼 창을 활짝 연 후 컴퓨터 전원을 켰다.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발목이 드러나는 갈색 바지와 베이지색 피케셔츠가 꽤 도시적이다. 가운을 걸치며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가 입술을 달싹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에잇, 창문을 도로 탁, 닫았다. 창밖의 배롱나무에 걸어둔 ‘전면주차’는 매번 외면당했다. 차에서 내린 두 여자가 옆 건물로 재바르게 걸어갔다. 한 주차장을 쓰는 왼쪽 건물은 성형외과였다. 요양병원과 나란히 붙어있는 것이 왠지 엽기적이다. 젊음과 늙음이 전혀 다른 이유로 바동대는 것만 같다.

닥터 뚜렛은 재킷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진료 전 그의 습관을 모르지 않는 김별 간호사가 흡연실로 가는 그에게 말했다.

“매연이나 담배나? 선생님, 궁금해서 말인데요, 금연을 시도한 적이 있긴 있었어요?”

“당연, 작년 이맘때 끊었지.”

“오, 얼마나요?”

“금연이 수명을 연장한다는 건 참 맞는 말이야. 글쎄 이틀을 끊었는데, 그게 말이야 2년을 산 것 같지 뭐야.”

간호사는 고개를 젖혀서 웃었다. 그녀는 몇 장의 차트를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웃음기라고 없는 닥터 뚜렛의 낯빛에 온기가 돌 때가 있다면 뻐끔뻐끔 담배를 피울 때나 시시한 농담을 할 때였다. 간호사들은 연방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것이 마흔을 훌쩍 넘긴 독신남에 대한 호기심인지 연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김별 간호사는 행정이며 병실 안내까지 총괄하는 간호 부장으로 7년째 그와 함께 일했다. 병원에는 의사 같은 간호사가 있는가 하면 간호사 같은 의사도 있는데 그녀는 전자였다. 이곳은 딱히 의사의 능력이 중시되지 않았다. 돈 많은 남편을 둔 여의사, 의료사고 의사, 혹은 정년 후 시간을 보내는 의사들이 상주해 있었는데, 평균연령 팔십인 환자들의 통증을 완화하는―약물과 재활, 물리치료를 처방하는―것이 그들의 업무였다. 책무라면 소견서를 써 주거나 사망 판정을 내려주는 것이니 아무래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와는 무관해 보였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닥터 뚜렛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남녀구별을 알고자 찾아온 임산부에게 양수검사를 하거나 6개월 된 태아의 인공유산을 도왔으니 법에 위반된 행위였다.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의 삶은 벼랑 끝이라는 그의 신념이 바탕 되어 있었다.



“윤초이 할머니! 오랜만이에요. 저 아시죠? 별이요!”

“엄마, 간호사님 인사하잖아, 보시다시피 심기가 불편하십니다.”

“할머니, 일단 진료 먼저 보시고요, 별이가 209호실 얼른 알아볼게요!”

윤은 허리를 조금 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유난 좀 그만 떨어, 이제 내 집이려니 해야지, 할머니들과 잘 지내고…”

“알았다잖여, 넌 어여 가.”

별 간호사가 팔짱을 끼자 윤은 끙,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골반 통증을 호소했는데 무엇보다 당 수치를 떨어뜨려야 했다. 식이요법이 필요한 당뇨 환자였던 그녀는 이번이 세 번째 입소였다. 보호자는 그새 간 듯했다. 돈이 효를 대신하지! 닥터 뚜렛이 처방전을 쓰면서 입술을 달싹달싹했는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중얼거림은 상스러운 말이나 욕설을 내뱉는 뚜렛증후군으로 오해받기도 했는데 뇌장애는 아니었다. 트라우마로 판명되었고 극복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오래되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면 그의 혼잣말이 밥물이 끓어 넘치듯 입 밖으로 새 나왔다.

닥터 뚜렛은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녀는 이제 더는 퇴원하지 않을 것이며 이곳은 그녀가 머무를 마지막 이승이 되리라는 것을. 인부들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병원 뒷마당에는 붉은 벽돌의 3층 건물이 보수공사 중이었다. 요양병원이라면 회 접시 곁에 놓인 와사비처럼 장례식장이 함께 하지 않는가.

그의 진료실은 복도 끝의 5번방이었다. 방 옆에는 그가 하루에 몇 번씩 드나드는 비상구―‘출입금지’라고 써 놓은―가 있었다. 외부 계단으로 이어지는 그 테라스는 가끔 인부들이 앉아 있곤 했지만 그의 흡연실이나 다름없었다. 의자라도 하나 갖다 놓을까 했지만 매번 생각에 그칠 뿐이었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검은 상복을 입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담배 연기로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가로 혹은 세로획을 긋곤 했는데, 이따금 길게 늘어선 화환들을 보면서 그곳으로 보낸 그의 환자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윤은 이번에도 컴퓨터가 있는 휴게실 옆 병실인 209호를 원했고 허수아비처럼 흐느적대는 환자복이 싫다며 평상복을 입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닥터뚜렛은 이따금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간호사의 잦은 왕래나 간병인의 참견을 싫어했으며 회진마저도 귀찮아했다. 혼자서도 거동이 가능한 그녀는 ‘우수 고객’에 ‘장기 투숙객’이 될 터, 웬만해선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닥터 뚜렛은 평소와 다름없이 뒷마당을 서성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젖히고 연기를 내뿜었다. 기역으로 꺾인 2층 휴게실에―컴퓨터 앞에 앉아있는―윤이 보였다. 사각 창틀에 들어있는 하얀 단발의 노인은 그림액자처럼 보였다. 그녀는 왠지 푸념을 쏟아 내거나 버럭대는 환자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적어도 징징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미쳤을 때 최 원장이 요구한 면담일지가 떠올랐다. 그는 그 리스트에 그녀를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미래요양병원을 설립한 최서형 원장은 퇴임한 명예교수로 ‘대화가 치료다’라는 강연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오래전부터 ‘닥터 뚜렛!’으로 부르는 그의 은사이기도 했다. 원장은 종종 미술치료, 음악치료에 참여했으며 무엇보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중시했는데, 타 병원과의 차별성을 내세우며 주치의들에게 환자와의 면담일지를 작성하라고 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그들’과 놀아주는 일이 수술을 집도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토로했다.

수요일 오후 세 시는 음악치료 시간이었다. 구부정한 노인들이 하나둘 병실 밖으로 나왔다. 휘어진 다리에 헐렁한 바지가 휘적휘적 감겼다. 승강기 앞에 모인 표정 없는 얼굴들이 흙먼지에 덮인 들풀처럼 파삭했다. 간병인이 소강당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초이 할머니는 오늘도 안 간대요? 별 간호사가 정 노인에게 물었다. 몰러, 종일 한 마디도 안 혀. 한 양반은 입에다 뭘 막아놨지, 노망난 것들 똥 싸대서 병실을 옮겼더만 여그서는 심심혀서 죽겄어. 할머니, 우리끼리 스트레스 풀자고요, 오늘은 어릴 때 불렀던 동요래요. 간호사는 승강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윤은 보글거리는 산소통 옆의 하 노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닥터 뚜렛이 병실로 들어서자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윤초이님,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있다면 불렀겠지요.”

“점심은 어땠습니까?”

“싱거운 게 늘 문제요. 국인지 물인지, 당최.”

“당 수치가 내리면 간을 좀 더 하지요. 따분하실 텐데 저랑 잠깐 나갈까요? 볕이 참 좋습디다.”

“노래 교실이라면 안 갈 거요. 차라리 커피나 한잔 마시게 해주지요?”

“아하, 저도 갑자기 달달한 커피가 당기네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우리가 그것도 맘대로 못하면 되겠소? 차라리 삶을 끊고 싶으이.”

침대 옆의 지팡이를 건네자 걷는 건 문제없구먼. 하며 일어섰다. 옥상 휴게실에는 인조 잔디를 깔아놓은 토끼장이 있었다. 윤이 쭈쭈쭈, 혓소리를 내자 토굴 속에서 토끼 두 마리가 화들짝 달려 나왔다. 고놈, 볕이 좋아 그런지 통통하니 잘 컸구먼. 잎사귀 하나를 밀어 넣으며 그녀가 눈을 깜박거렸다. 창백한 얼굴은 구겨진 한지처럼 주름졌고 양 볼은 심술 난 아이처럼 동그랗게 처져 있었는데 눈동자가 유난히 새까맸다.

“천천히 드세요, 몰래 먹는 커피는 더 맛있답니다.”

“퇴원을 졸랐던 게 이놈의 커피 때문인걸. 말리면 더하고 싶거든.”

“하하, 저 역시도 담배를 못 끊는걸요. 어르신, 하늘 좀 보십시오. 어찌 저리 푸를까요?”

윤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실눈을 떴다.

“곱게 물든 파랑이오? 잉크 물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시퍼렇소?”

“네? 요즘 눈 상태가…”

“농이오. 아직 그 정도는 아니구먼.”

웃을 듯 말 듯한 눈가에 설핏 장난기가 돌았다.

“난 이제 글렀어. 눈에 떠다니던 벌레가 살쾡이로 변했는지 어젯밤에 말이오, 살쾡이 한 마리가 침대 밑으로 난간 위로 슬금슬금 돌아다니지 뭐요. 실은 잠을 좀 설쳤어.”

“하, 꿈을 꾸신 게지요. 안과 진료를 다시 봐야겠습니다.”

“일없네요. 당뇨에 따라오는 거, 다 알고 있구먼. 장기에 탈이 없다니 한참을 더 살아야 할 징조여. 내 근심이 그것이오, 눈 없이 살게 되는 거. 내가 살아있는 시간은 컴퓨터 앞에 있을 때요. 아들도 손주도 거기서 만날 수 있어. 허니 눈은 내 심장이지.”

“아드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그놈, 공부를 조금만 더 잘했으면 당신처럼 의사가 됐을 건데, 여자 때문에 시기를 놓쳤지 뭐요. 뒤늦게 공부한답시고 미국 땅으로 갔구먼. 바다 건너오기가 쉽지 않나 보오. 손주 사진이나 보러 가야겠수다.”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어르신, 이건 어때요? 저랑 블로그 친구가 되는 겁니다!”

“… 왜 그래야 되지요?”

“어르신은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알지 않습니까?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거지요.”

“생각은 가상하다만… 뭘 이야기하라는 게요?”

“뭐든지요. 흠, 농이면 더 좋구요.”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잠시만요, 하며 팔을 뻗었다.

“늙은이 얼굴은 왜 찍는 게요?”

“데이트 기념이지요. 초이님은 참 고우십니다.”

“이런, 운이 좋은 날이구먼.”



탬버린을 든 음악 치료사와 간호사들이 노인들 사이를 오가며 흥을 돋운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잊어버린 걸까, 노인들은 노래방 영상도 노랫말 카드도 보는 둥 마는 둥 입술만 오물거린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 늘어지는 노래가 동요인지 트로트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노래기기가 멈추면 다시 정적이 흐른다. 버석버석 봉지 소리가 난다. 간병인이 도넛을 하나씩 돌린다. 합죽한 입가에 흰 가루가 묻는다.



“나 좀 죽여주시오.”

블로그에 남긴 윤의 첫 문장이었다. 으레 있는 일이다. ‘죽음’은 오로지 자신의 몫, 그들의 분노는 두려움이었고 그들의 한숨은 외로움이었다. 철저한 고독보다 치매가 낫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닥터 뚜렛은 차분하게 글을 남겼다. “초이님은 당연히 행복할 이유가 있습니다. 저랑 커피도 마시고 재미난 이야기도 나눠야지요. 어르신의 건강에 제가 최선을 다할 겁니다.” 며칠 뒤 그녀의 글이 기대 이상으로 생기를 띠었다.

“나무껍질처럼 거친 줄 알았더니 감성이란 게 아직 남아있나 보오. 나는 슬픔을 동경하는 오래된 버릇이 있는데, 자기연민이랄까 그런 것 말이오. 그런데 지금 내게서 물복숭 냄새가 나는 것 같소. 무릎에서부터 차오르는 애잔한 것이 몸을 감싸는 것 같으이. 그러니까 선생, 그것이, 나쁘지 않다는 거요. 얼마 전만 해도 구더기가 내 몸을 파고들 것 같았거늘.”

회진을 돌 때면 윤은 토라진 아이처럼 입을 꼭 다문 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건지 뻔한 질문은 하지 말라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모습과 상반되는 그녀의 글―슬쩍슬쩍 내비치는 해맑은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막연한 적대감이려니 생각했다.

“의사 양반, 간만에 글을 쓰니 몸이 달아오르오. 고장 난 라디오가 켜진 느낌이오. 연애편지라도 거뜬히 쓸 수 있을 것 같으이. 시로 세상을 그렸던 때가 떠올라 괜히 으스대고 싶으이. 내 눈이 더 소중해졌소. 뭘 쓰나 했는데 문진에 답을 쓰는 게 먼저겠구먼. 오늘 운이 좋게도 손자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가 와있지 않겠소. 선생, 메리 크리스마스요.”

윤에게 당뇨망막병증이 나타나고 있었다. 시각세포가 밀집된 황반부의 장애로 시력이 저하되는 합병증이었다. 혈당조절로 신경망막병의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조기 치료를 놓친 그녀의 경우는 실명될 확률이 높았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살쾡이가 보인다는 그녀 말이었다. 환각 증상은 치매와는 다른, 정신 질환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요즘은 살쾡이 안 오죠? 밤마다 제가 창문을 꼭꼭 잠가요.”

별 간호사가 혈압 봉에 바람을 넣으며 넌지시 말했다. 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감탱이가 요 끝에 턱 하니 앉아 있더만.”

“영감님이 뭐래요?”

“까닥까닥 손짓만 하데. 안 간다 했지. 거길 내가 왜 가.”

닥터 뚜렛이 점심을 먹고 왔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벙거지를 쓴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윤초이님 보호자라는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조금 전 흡연실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던 여자였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어 가슴골이 드러나는 브이넥 티셔츠에 꽂았다. 모자챙 아래 보톡스를 넣은 이마가 불그스름했다. 대부분의 모녀는 늙을수록 닮아가거늘 얼굴도 말투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의 말이 그의 귓전에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따끔거리긴 한데 참을 만해. 노인네 잠깐 보고 가려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내야지. 맞아, 꼭 포로수용소 같다니까. 무식하긴, 존엄사라고 하는 거야. 아직은…’

닥터 뚜렛은 입술을 꾹 여민 채 차트를 열었다.

“예전보다 식사도 잘하시고 골반 통증도 좋아졌습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작년 이맘때 동생이 사고를 당했어요. 근데 엄마는 아들의 죽음을 아직도 믿질 않아요.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지 여전히 기다려요. 너무 바빠서, 너무 멀어서 못 오는 거라고. 기다려보자고 말했어요. 엄마가 발작을 일으키면 감당할 수가 없거든요. 차라리 그게 낫더라고요. 조카에게 부탁도 했어요. 사진도 띄우고 메일도 보내라고. 이제 와서 번복할 수도 없고…”

“아, 그런 일이… 아드님 얘기는 되도록 피해야겠습니다. 우기거나 거부해서는 혼란만 키울 겁니다.”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큰 병원으로 옮긴다거나 검사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엄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요. 연명거부 사인도 해놓았습니다. 돌볼 형편은 안 되고 용만 쓰이네요.”

닥터 뚜렛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 말을 다한 여자는 구둣발 소리를 또각또각 울리며 복도를 빠져나갔다. 닥터 뚜렛은 기다린 듯 흡연실로 향했다. 2층 창 너머를 흘긋하며 한껏 연기를 뿜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서너 명의 여자들이 손으로 코를 가렸다. 담배 피우는 남자가 멋있다고 한 시절도 있었건만. 흡연자가 범법자로 취급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훅 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뿐인가 하다가 불현듯 ‘죽음’이 떠올랐고 그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또 노인을 방치하는 자식과 아기를 방치하는 부모를 저울질하기도 했다. 그는 입술을 움찔움찔하며 담뱃불을 짓이겼다.

최 원장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닥터 뚜렛! 이번 면담을 사보에 싣도록 합시다. 블로그 친구 맺기라니, 환자와의 소통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나.’ 그는 잠시 퇴근을 미루고 블로그를 열었다. 마침 윤이 들어와 있었다.

“윤초이님, 이제 한번 써 보시지요. 가령, 살면서 참 잘한 일이라든지 후회되는 일이라든지 혹은 좋은 기억이나 좋았던 장소… 그전에,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주면 참고하겠습니다.”

“고맙소, 선생. 난 전을 좋아했구먼,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얇게 부친 전들은 참 맛있잖소. 그중에서도 호박전이 으뜸이지. 사실 이곳 음식은 미적지근하잖소. 맵지도 달지도 시지도 않아, 김치인지 나물인지… 거죽은 쭈그러들어도 혀만은 여즉 촉촉하니… 딸년은 나더러 유난스럽다지만 내가 요리 하나는 찰지게 했수다. 선생은 뭘 좋아하오?”

“음, 고구마요. 혹시 야끼모라고 아십니까? 도형 모양으로 썰어 기름에 튀긴 거요.”

“아다마다, 꿀에 굴려 먹는 거 말이시, 우리 애도 그걸 참 좋아했구먼. 금방 튀긴 걸 주워 먹다가 입천장이 헐기도 하지.”

“하하, 맞아요. 기억력이 좋으십니다. 하루빨리 건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제게도 어르신의 요리를 먹을 기회가 올 테니까요.”

“이런, 정신이 아득해지오. 선생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별이가 찾는구려. 저것이 나를 잠시도 가만두질 않소이다.”

조금은 귀찮은 작업이 될지 몰랐다. 의사가 된 이유를. 결혼을 안 한 이유를. 그녀가 물어왔기 때문이다.

“초이님, 이 공간은 어르신 것입니다. 저는 친구이자 주치의지요. 저는 글보다 말재주가 더 좋답니다. 제 이야기는 볕 좋은 날에 입으로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조금 전부터 꼼지락대는 뭔가가 자꾸 거슬렸다. 마치 운동화 속의 버석대는 모래알갱이 같은, 하잘것없지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그것은 ‘살면서’라는 글자를 칠 때부터 불쑥불쑥 떠오르는 그의 유년이었다. 검은 몸빼가 펄럭펄럭 눈앞을 스쳐 갔다. 안 처먹을 거면 뒈져 버려! 다그치는 할머니… 쓴맛만 나던 된장찌개… 욕지기를 해대는 아이… 그는 회전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어둑해진 창밖을 바라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성긴 눈발이 비로 변해가고 있었다. 현관 앞이 흙탕물로 지저분했다. 독감 접종 안내문 아래 손 소독제와 일회용 마스크가 비치되어 있었다. 닥터 뚜렛은 드문드문 흰 가닥이 섞인 머리를 손으로 넘기며 체크 목도리를 풀었다. 면도한 턱이 푸르스름했다. 블로그를 열자 윤의 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 잘한 일이라… 잘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나 보오. 이웃에 살던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리다. 그애는 여덟 살 난 아들의 친구였소. 그전에, 나는 일찍이 미혼모였던 적이 있었다오. 모성애라니,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소. 지혜도 분별력도 책받침처럼 얇았던 게지. 어디선가 크고 있을 딸을 보듯 그애를 대하게 되더이다. 할머니와 사는 그애는 무척 불행했소. 계집애처럼 생긴 그애는 아줌마 아줌마하며 나를 참 잘 따랐지. 눈치가 팔 단인 게 참말로 총명했거든. 먹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사는 그애에게 난 뭔가를 먹이려고 애를 썼어. 우리 애보다 머리통 하나는 작던 그애가 토실토실 살이 붙기 시작했소. 조금씩 밝아지는 그애 표정만으로 난 만족했소. 이런 망할, 눈앞이 안개 낀 것 같으이. 내일 다시 오리다.”

닥터 뚜렛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입술을 움찔움찔하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별 간호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제야 대기자가 있다는 걸 그는 기억했다.

“안색이 별로네요 선생님. 차라리 한 대 피우시고 시작하는 게?”

“별이 아니랄까봐 별소릴.”

간호사는 재활 먼저 갑니다요, 하며 문을 도로 닫았다.

그는 양 볼이 패도록 담배를 빨아들였다. 2층 창 너머를 흘긋 올려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담뱃불이 타들어 갔다. 상념을 떨쳐버리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괜스레 구두 앞코로 꽁초를 짓이겼다. 흙탕물이 고인 얼음판이 와작와작 부서졌다. 언제 왔는지 상복을 입은 남자가 옆에서 빈 담배를 물고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불필요한 양반! 그가 라이터를 건네주고 돌아서자 남자는 머리를 꾸벅하며 벙긋거렸다.

닥터 뚜렛은 이틀 뒤에야 윤의 글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마흔을 넘긴 딸년을 찾아서 어쩌려는지 알 수 없지만 죽기 전에 해야 할 소임 같았소. 평범하게만 살고 있다면, 했던 건 내 착각이었소. 딸의 마음에 난 구멍이 오죽 컸겠소? 에미라니, 짐짝 아니겠소?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라오. 이런, 옆길로 샜구먼. 그애 이야기를 마저 할 참이오. 언제부턴가 아들의 장난감이 안 보이더니 서랍 속 동전이 없어지기도 했소. 그럴 수 있거늘, 개의치 않을 작정이었소. 그러던 어느 날, 치와와 한 마리가 죽어있는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소. 아들 녀석도 눈을 멀뚱거리며 그애 옆에 서 있더군. 주차된 차에 돈을 훔친 것도 개에게 돌을 던진 것도 그애라고, 할머니 손자라고. 여자들과 아이들이 입을 모았어. 할머니가 그애 머리를 쥐어박았어. 이놈의 웬숫덩어리, 고마 죽자 죽어! 젊은 여자가 그애 어깨를 마구 흔들며 야물차게 캐물었어. 토토가 널 괴롭혔어? 달려들기라도 했어? 왜 그랬냐고, 왜! 여자의 팔을 획 뿌리치며 그애가 소리쳤어. 그냥! 그냥 했다고! 그때 그애 눈이 나와 마주쳤어. 내 쪽으로 한 발 내딛던 그애가 멈칫했어. 내가 아들놈의 손목을 꿰차고 돌아섰거든. 흔들리던 그애 눈동자가 아직도 생생하오. 그애의 훌쩍임이 울음으로 터졌소. 난 돌아보지 않았소. 또 하나의 업을 쌓고 말았지. 섣부른 사랑이 그애를 더 아프게 했을 테니. 선생, 참 잘한 일이란 게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니 두 개의 답을 완성한 것 같소이다.”

닥터 뚜렛은 가슴을 더듬어 담배를 꺼내 물다 도로 내려놓았다. 틱, 틱. 라이터를 공회전시켰다. 팟, 팟. 불씨가 튕겼다. 티틱, 파팟, 티틱, 파팟. 가솔린 냄새가 새 나왔다. 형우의 커다란 눈이 가물거렸다. 아줌마였어… 아, 형우… 그의 입술이 금붕어처럼 벙긋벙긋했다.

“그랬어, 당신의 얼굴은 푸석하지도 주름지지도 않았어. 당신은 빨간 집이 수 놓인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어. 내가 빤히 쳐다봤나 봐, 어쩌면 당신이 먼저 내게 눈을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당신이 나를 식탁 의자에 앉혔어. 무릎을 접어 나와 눈을 맞췄어. 그리고 앞치마를 펼쳐 보이며 여기, 요리의 신이 살고 있어! 라고 말했어. 그리고 시계를 가리키며 5분이 남았다며, 4시가 되면 마법이 시작된다고 했어. 어른들은 가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형우가 뭐든 잘 먹잖니? 라는 당신의 말은 그럴듯했어. 뭐든 안 먹겠다는 내게 게임을 거는 거라 생각했어. 학원 간 형우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당신을 차지할 수 있었으니 나는 좋아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어. 자, 이제 눈을 감아. 당신의 손이 내 눈을 쓸어내렸어. 최고의 맛이여 영원하라! 나무 피리에서 나올 법한 당신의 콧소리에 웃음이 나올 뻔했어. 당신은 등을 돌리고 툭닥툭닥 고구마를 썰었어. 네모 세모 동그란 것을 기름 팬에 넣었어. 눈 감고 있지? 당신이 물을 때마다 네! 소리치며 난 얼굴을 더 찌푸렸어. 당신은 튀긴 고구마에 재바르게 꿀을 묻혔어. 할머니가 꺼져가는 불씨라면 당신은 파랗게 타오르는 불꽃같았어. 기름 냄새가 고소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 거짓말처럼 입속에 침이 고인 거야. 목구멍으로 뭔가를 삼키는 게 내겐 정말 고역이었건만… 눈을 떠도 좋아! 야끼모가 식을 동안 기다리라며 당신은 딸기를 씻기 시작했어. 그리고 꿀고구마를 하나하나 접시에 올리는데 당신은 어쩐 일인지 좀 전과 다르게 꿈지럭거렸어. 천천히. 느적느적. 그 슬로우 모우션에 내가 소리치고 말랐어. 아줌마! 언제 먹어요? 당신이 웃었어, 깔깔… 깔깔 웃던 그녀… 내게 ‘엄마’라는 세계를 보여준 그녀… 당신이었어.”



윤이 물리치료실 앞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털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소파 귀퉁이에서 빠져나온 스펀지를 만지작거렸다. 닥터 뚜렛은 핏줄이 불거진 그녀의 손등을 보자 깔깔 웃으며 딸기를 집어주던 그녀가 스쳐 갔다.

“초이님, 어젯밤엔 통 못 주무셨다면서요?”

“밤에 못 자면 낮에 자면 되고, 낮에 못 자면 밤에 자면 되고…”

“잠시 제 방으로 가시지요, 카페인이 없는 커피가 있습니다.”

“그런 건 별로야, 사람으로 치면 영혼이 없는 거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녀는 며칠 전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칼바람이 불어댄다는군. 이놈의 겨울은 그저 늙은이들을 괴롭히기나 하지. 선생은 모를 거요, 허무하다고 느낄 때는 그래도 살만해. 죽을 때가 되면 환멸이 따라오거든. 정을 떼야 갈 것 아니오.”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안 해도 될 말이다. 별 간호사가 옆에 있었다면 울려는 아이 뺨치기, 라 했을 것이다. 어설픈 관심이라 했을 것이다.

“… 선생, 청이 하나 있소. 들어주겠소?”

“그, 그럼요. 뭐든… 말씀해 보세요.”

“내 몸에 호스 안 꽂겠다고 약속해 주구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안 나, 밥은 먹었는지 세수는 했는지. 화장실 가는 것도 까먹어.”

“하, 저도 깜박깜박하는걸요. 괘념치 마세요. 어르신은 컴퓨터도 다루시는걸요.”

“그것도 기억이 안 나. 지문 같은 그거, 아이디 말이오. 아무래도 경고등이 켜진 것 같어. 사는 건 긴 고통 죽는 건 짧은 고통이라는데 내가, 오동낭게 걸렸어.”

“찜질하시고 한숨 푹 주무시지요.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겁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만 내쉬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별 간호사가 그녀의 물리치료 순서를 알려왔으니 잠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윤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우리가 물건이 아니잖소! 그녀의 눈가가 금세 달아올랐다.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기계가 아니란 말이오! 당신들, 망가진 몸이 더는 쓸 수 없을 때를 기다리지 않소! 그런 게 존엄사라는 것 아니오? 콧줄로 먹고 싶지도 않고 오줌줄로 싸고 싶지도 않단 말이오!”

별 간호사는 잽싸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풀어진 목도리를 여며주며 팔짱을 끼자 그녀가 몸을 획 틀었다. 치워, 혼자 갈 거구먼! 그는 비틀대며 진료실을 나가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재치라곤 없는 자신이 무척 못마땅했다.



꽃샘추위가 이어졌다. 닥터 뚜렛이 세미나 일정으로 한 주 동안 병원을 비운 다음 날이었다. 진료실로 들어서자 별 간호사가 곧장 따라 들어왔다. 간호일지를 쓱쓱 넘기며 종알대기 시작했다.

“치매가 아닌 분열증이에요. 피해망상에 환시와 환청, 분노… 엉망이에요.”

“처방도 좀 하지 그랬나.”

“그저께는 약을 내동댕이쳤고 어제부터 식사도 목욕도 거부했다고요. 초이 할머니요!”

닥터 뚜렛은 꺼낸 담배를 집어넣고 계단을 내디뎠다. 그는 마지막으로 본, 날이 선 윤의 글을 기억했다. 바늘처럼 뾰족한 어투였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구려. 개똥밭이나 감사, 감사하라는 이곳 말이오. 한 뼘 뒤에선 장례를 치르고 우리는 순서를 기다리지. 기다린다는 것이 꼭 희망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은 알지 않소. 존경하는 의사 양반 부탁이오. 탈출을 갈망하는 눈들을 모른 척 마시오. 혹여 숨이 멈출까, 별 조치를 다 하는 구질구질한 것들을 걷어내시오. 영혼마저 구질구질해지니 말이오. 내게는 어떤 호스도 꽂지 마시오. 절대로!”

윤이 벽을 더듬으며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글이 없어 궁금했습니다. 손주 사진도 안 보시고?”

윤은 낯선 이를 쳐다보듯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눈깔 나간다고 집어치우래.”

“… 밥은 왜 안 드십니까? 입맛이…”

“먹지 마래. 귀가 어찌 된 게야? 저 노랫가락이 안 들려?”

“그건 옳지 않아요. 봄이 오고 있어요. 저랑 꽃구경 가기로 했잖아요. 커피랑 담배랑…”

“가지 마, 가지 마, 안 들려? 형우 말이 안 들리냐고!”

윤의 눈에 원망과 불신이 가득 차 있었다. 또 시작이구먼, 혀를 차며 정 노인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선상님, 내 이마 짝에 혹 좀 보소, 저이가 숟가락을 던졌구만요, 눈 빠질 뻔했당게요. 누구는 미쳐서 여기 온다더만 난 여거 와서 미치것소.”

윤이 갑자기 병실 문 쪽을 노려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갈 겨, 갈 거라고!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닥터 뚜렛이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힘줘 말했다.

“윤초이님! 제 눈을 봐요. 숨을 크게 쉬어 봐요. 이렇게 후, 후.”

윤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반쯤 벌린 채 그를 잠깐 바라보았다. 눈의 초점이 정확하지 않다는 별 간호사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어르신, 괜찮아요? 그의 말은 아랑곳없이 그의 어깨너머를 힐끔거렸다. 그리고 귓속말하듯 속삭였다.

“아즉도 있어. 쩌기.”

예상치 못한 빠른 진행이었다. 실명 위기는 그녀에게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그건 환각의 원인이기도 했다. 벽을 보고 중얼거리더니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겐 소리를 질렀다. 소변을 참지 못한 자신에게 죽일 년인 겨, 병신인 겨, 할 때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였다. 간호사를 밀치고 얼굴을 닦아주던 간병인의 손을 깨물기도 했다.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첨가하고 정신과 약을 추가해야 했다. 자해나 상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닥터 뚜렛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순한 개처럼 잠에 빠질 것이고 눈을 희번덕이며 말조차 어눌해질 것을. 수용소 같은 집중치료실에서 소변줄은 물론이고 코와 위장을 연결한 호스로 섭식하리란 것을. 그리고 뭉크러진 복숭아처럼 진물이 나고 사지가 굳어가도 그녀의 삶은 계속되리라는 것을.



봄비가 오락가락하며 종일 내렸다. 그날은 생일상을 받고 온다는 정 노인에게 외박을 허락한 날이기도 했다. 흡연실 담벼락이 비에 젖어있었다. 담쟁이 넝쿨이 쭉쭉 세력을 넓히며 벽을 덮고 있었다. 닥터 뚜렛은 타들어가는 담배를 잊은 채 넝쿨잎 하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거대한 대열에서 이탈해 버린 잎이었다. 아이 손바닥만 한 그 잎은 갈라진 시멘트 틈에 끼어 비바람에 바들거렸다. 더는 오르지 못할 이파리를 그가 톡톡 건드렸다. 팔락거리며 발아래로 떨어진 이파리는 물웅덩이에서 살랑살랑 동심원을 그리더니 한순간 빗물에 쓸려 내려갔다. 잎맥이 혈관처럼 붉고 선명한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닥터 뚜렛은 별 간호사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2층으로 향했다. 계단참에서 간호사실이 있는 긴 복도를 주시했다. 티브이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교대 시간이 된 두 간병인이 승강기에 올랐다. 그는 태연스레 209호로 들어갔다. 하 노인의 산소 방울은 어김없이 올라오고 있었고 김 노인은 푸푸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윤의 곁으로 성큼 다가섰다. 물기 어린 그녀의 눈이 번들거렸다. 더는 보지도 담지도 못하는 그 눈은 바닥까지 휘저어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빈 항아리 같았다. 그는 베개를 빼내 들었다. 지긋이 힘을 가했다. 빗소리가 점점 차올랐다. 숨이 죽은 베개는 쿠션이 적당했다. 그 일은, 넝쿨잎을 건드려준 것만큼 쉽고 간단했다.



목련이 피는가 했더니 그새 지고 있었다. 열정도 고혹함도 사라져버린 누렇게 뜬 목련은 붉게 번지는 영산홍에 오월의 화단을 내어주고 있었다. 햇살이 책상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닥터 뚜렛은 사보에 실을 글을 간추렸다. 깜박이는 커서 앞에 그의 눈이 멈추었다.

“선생, 내가 좋아한 것들은 말이지 대단찮은 것들이오. 초록초록 내리는 빗소리나 구불구불한 숲속 길, 더 보태면 시시한 농담 같은 것이오. 웃으려고 사는 것 아니오? 인생살이란 게 배배 꼬인 새끼줄이잖소, 거친 줄에 기름칠하듯 나는 농을 즐겼소. 죽을 땐 어떤 농담을 할까 상상하던, 그런 때도 있었다오. 개망초가 흐드러진 강변로가 문득 그립소. 긴장하시오, 선생. 더 살겠다고 떼쓸지도 모르니.”

“하하, 봄이 오면 뒷산 자락이 온통 진달래지요. 꼭 한번 가기로 약속해요.”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쓰더이다. 쌤, 쵝오! 별이는 데리고 가지 맙시다.”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곳에도 봄꽃이 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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