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강효욱 작곡가
강효욱 작곡가

 

[동양일보]20세기 말엽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뉴에이지’음악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조지 윈스턴, 야니, 유키 구라모토 등이 연주한 음반이 수없이 팔리고 영화, 광고, TV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빈번하게 사용되어 그야말로 ‘뉴에이지’의 시대를 열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이 이미 백여년 전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낭만시대 후기에 드뷔시, 라벨, 피카소 등과 함께 어울렸던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티는 19세기말부터 1차 세계대전(1914)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유럽의 평화시기로 구분되는 ‘벨 엘포크(Belle Époque)’시대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음악을 시작하였으나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고, 군대에 입대하였으나 적응하지 못해 탈영을 하고, 평생 한사람의 연인을 만난 3개월 이외에는 홀로 집에 고립되어 지냈으니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작품과 생애를 들여다보면 ‘그로테스크(grotesque,기괴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림과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몽마르뜨에 있는 재즈 바 또는 누추한 자신의 집에 처박혀 다양한 작품들을 남기는데 ‘바싹 마른 배아’, ‘개를 위한 엉성한 전주곡’, ‘관료적 소나티네’ 등 그 제목이 심상치 않다. 낭만시대의 음악과는 동떨어진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했던 에릭 사티는 사는 내내 가난과 고독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이 그린 자화상 아래 “나는 이 늙은 세상에서 너무 젊게 태어났다."라는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

에릭 사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짐노페디(1888)’와 ‘그노시엔느(1890)’를 들 수 있다. 광고음악으로 종종 사용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고있는 작품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나체의 남자가 춤추던 의식 무도를 가리키는 ‘Gymnopaedie’에서 사티가 따온 말이다. 1,2,3번 세 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짧은 피아노 소품으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반주 위로 사티 특유의 색채를 나타내는 음울한 멜로디가 흐른다.

현대에서 영화 삽입곡으로 잘 알려진 ‘그노시엔느’는 조성과 마디를 구분하지 않고 작곡한 노래로 당시에는 그저 기괴한 작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동시대 작곡가들과 달리 화성체계를 무시하였으며 조성을 구분하지 않고 작곡하여 무조성을 띄는 현대음악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멜로디와 화성은 신비한 소리를 동반한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체계가 아닌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해야 할까? 그의 곡은 단순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다.

신비한 그의 작품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1897)’이다. 성악, 피아노, 현악 등 여러 가지 편성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이 노래는 에릭 사티가 평생에 단 한명 사랑했던 연인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을 위해 작곡하였다. 수잔 발라동은 당시 르느와르, 드가 등 유명화가들의 사랑을 받는 모델이자 화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떨어져 사랑에 목말랐던 사티는 그녀에게 빠져들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불같은 성격을 지녔던 수잔은 단 3개월 동거 끝에 창밖으로 뛰어내려 도망가고, 사티는 이후 집에 누구도 들이지 않고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흐르는 사티의 음악 ‘당신을 원해요’는 그의 사후 38년만에 프랑스의 영화 감독 루이 말(Louis Malle)에 의해 발견되어 영화 <도깨비 불(Will O' The Wisp, 1963)>에 삽입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기상천외한 상상력들로 자신의 음악을 채웠던 에릭 사티, 비록 그의 생애는 외로움과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그의 아름답고 신비한 음악들은 담담히 현대로 걸어와 우리에게 상냥한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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