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동양일보]우리 사회에서는 종교들 사이의 관계가 좋은 편이다. 대표적인 제도종교인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눈에 띌만한 특별한 충돌 없이 잘 지내고 있고, 다른 종교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 땅에 최초의 종교로 정착한 무속이 도교와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와 차례로 만나면서 형성해온 포용적인 종교문화 덕분일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교가 처음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전파될 때 유교에 기반한 제사 문화와 충돌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고, 최근에는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 신자들에 의한 불상 훼손이나 특정 종교에 편향된 정치인들에 의한 이른바 ‘땅 밟기’ 같은 비상식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땅 밟기’는 기도를 통해 그 지역의 대표 사찰들이 무너지라는 저주를 퍼붓는 행사라는 점에서 진정한 종교 행위로 볼 수 없는 폭력적인 사건이다. 최근에는 대구 지역에서 이슬람의 성전인 모스크 건축을 둘러싼 갈등도 부각되어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무슬림의 숫자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런 갈등의 소지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시민사회에 부담을 줄 만큼의 종교 갈등은 없는 편이다. 2015년을 기점으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는 통계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무종교인 사이의 갈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셈이다.

종교는 유한한 인간이 보다 완전한 삶을 꿈꾸는 과정에서 등장한 자연스런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는 그 완전한 삶을 절대적인 존재에 의존해 꿈꾸거나,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완전함의 가능성을 믿고 깨달아가는 방식으로 추구한다. 전자를 대표하는 종교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라면, 후자를 대표하는 종교는 불교다. 우리 종교 지형은 앞으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중심으로 하면서, 점차 이슬람과 만나는 장을 확장하면서 전개될 것이다, 이제 이슬람은 더 이상 ‘중동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어려운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종교이거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학생이나 관광객의 히잡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는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의해야 할 지점은 각 종교의 고유성과 진리를 존중해주면서도, 자신들의 종교만이 진리를 온전히 독점한다는 완고한 믿음과 배타성이다. 시민사회에서 종교의 자유는 그 자체로 보장받아야 하지만, 그 자유의 범위는 다른 시민의 종교에 관련된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다.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종교도 소중하고, 종교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 다수의 시민이 갖고 있는 종교관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도덕 교과와 사회 교과의 공청회장에서 벌어진 일부 기독교 세력의 반시민적인 행태는 우려할 만한 것이다. ‘성평등’은 ‘양성평등’으로 바꿔야 하고, 혐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교육과정 내용을 수정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주된 요구이다. 그리스도교 교리에 비추어보면 충분히 주장할 만한 것이고 그런 점을 고려하여 공청회장에서 충분한 발언 기회를 주고자 노력했음에도,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를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폭언을 하고 아예 발언 기회 자체를 박탈해버리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모든 종교에서 자신들만의 교리가 진리라고 믿고 다른 종교나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종교 근본주의라고 칭하며 경계하고 있다. 특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민사회에서 이런 태도는 함께 살아가야 할 동료 시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신적·육체적 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시민윤리의 핵심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 생각에 귀를 열고자 하는 자세와 역량이다. 종교 근본주의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시민윤리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시민 스스로의 삶을 향하는 내면적 시민교육과 가정과 학교가 협력하는 시민교육의 강화가 동시에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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