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현실과 연결해 활용 방안 찾을 때”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철학하는 삶’을 위한 2기 동양포럼 운영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동양일보 회의실에서 ‘우리에게 서양철학은 무엇일까’를 주제로 포럼을 가졌다. 운영위는 이날 철학박사인 서영식 충남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를 초청해 우리의 삶에 서양철학이 어떤 도움을 줄 주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병기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 서 교수는 철학적 지식을 리더십에 활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화는 상, 하로 나눠 월요일자 10면에 2회에 걸쳐 싣는다.

●주제 우리에게 서양철학은 무엇일까
●때 2022년 10월 26일
●곳 동양일보 회의실
●참석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주간)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주필) 서영식 충남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정리 김미나 차장

 

박병기 교수
박병기 교수

박병기 교수 “2기 동양포럼 큰 주제는 ‘철학하는 시민’입니다. 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철학함에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큰 주제를 내걸고 관련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중이죠. 이번 주제는 ‘우리에게 서양철학은 무엇일까’입니다. 사실 시민들 교육 수준이 꽤 높아서 서양 철학자들이나 서양철학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긴 한데, 그 서양철학이 도대체 우리에게는 무엇인지에 대해선 많이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를 가지고 3가지 하부 주제를 정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쉽게 떠오르는 서양 철학자는 누구이고 서양철학 사조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서양철학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우리의 삶에서 서양철학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등이 그 하부주제입니다. 일단, 서영식 교수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영식 교수
서영식 교수

서영식 교수 “저는 현재 충남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철학과 인문학 또 최근에는 리더십 관련된 교육과 연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전공은 서양 철학 중에서도 특히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사상을 공부했고 플라톤으로 학위를 받았어요. 이후, 제가 철학과가 아닌 자유전공학부에 재직하고 있다 보니 일반적으로 철학도 강의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을 넓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는 계기도 많이 주어졌고요. 또 철학을 응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서, 요즘에는 단순하게 철학에만 국한하지 않고 철학이 응용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박 교수 “먼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서양 철학 또는 서양 철학자가 누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서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서 교수님 먼저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서영식 교수 “우리나라는 이미 시민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또 고등학교에 철학·윤리 과목이 있어서 웬만한 철학자들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학엔 교양철학 과목이 있는데, 아주 초보적인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도 식상해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럼에도 철학자의 이름을 거론하라고 하면, 아무래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 두 사람이 고대 전통 철학에서는 가장 많이 호명되고 있고, 근대 이후로는 니체가 많이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니체의 경우 단순히 철학의 영역 뿐 아니라 문학이나 일반적인 문화·사상의 영역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더 많이 범용되는 것 같습니다.”

박 교수 “정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세근 교수
정세근 교수

정세근 교수 “교수님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니체를 말씀하셨는데 우리 윗세대들은 ‘데칸쇼’라고 그랬죠. 테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공부한다고요. 그러다가 실존주의를 했고. 최근 들어 젊은 사람들은 프랑스 철학에 관심을 갖고 들뢰즈를 공부하기도 하죠. 이와는 다르게 학생운동시절엔 한동안 마르크스가 붐이 일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아리스텔레스가 참 정교한 자기 주장이 많아서 서양철학사의 천재로 꼽습니다. 그리고 현대 인물로는 러셀을 뽑습니다. 왜냐하면 러셀은 정말 자기 문화인 기독교 자체를 반성하면서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내기도 하지요. 더나아가 최초의 반핵 운동도 합니다.”

박 교수 “저는 두 분 말씀에 대체로 다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는 특히 시민사회의 윤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존 스튜어트 밀이 떠오릅니다. 그는 공리주의 중에서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해서 시민사회 윤리와 잘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현대 철학자 중에서는 미국 철학자인 리처드 로티가 서양 철학사 전반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게 있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그 사람 책도 하나 번역하고 있는 중입니다. 말씀 중에 나왔지만 사실은 우리가 서양 철학을 접한 지가 꽤 됐거든요. 그 과정을 좀 간략하게 요약해서 우리가 서양 철학을 접하게 된 역사를 정리해주시지요.”

정 교수 “그보다도 먼저 박 교수님이 윤리 교과서 문제를 가지고 상당히 난감하셨던 걸 제가 언론에서 봤어요. 그때 설득을 하면서 ‘윤리의 기본은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이 바로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이기도 하고요. 왜 우리는 남의 의견을 안 들으려고 하는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참 궁금합니다. 저는 서양철학 유입 과정이 일본의 번역을 통해서 들어온 부분이 있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과거의 주자학이 그렇듯 우리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지나치게 추상화돼 우리의 문제와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문제해결 경험의 부재가 우리 생각을 좁게 만듭니다. 철학을 타자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서양철학이 너무 학문화 돼 있어 자기화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서 교수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철학은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고 그래서 그때그때마다 어떤 관심이나 주제가 계속 바뀌고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우리나라는 말씀하신 대로 일본에서 메이지 시대 초기에 ‘니시 아마네’라는 사람이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최초에 ‘희철학’(希哲學)으로 번역한 것을 줄여서 철학이라고 불렀고,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서 지금까지 어떤 비판이나 수정 없이 이어져 왔는데, 이것이 저는 하나의 스캔들, 즉 학문의 스캔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한자라는 것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또 한국을 통해서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근대 학문은 일본인들이 외국에서 들여와 번역한 것을 역으로 중국이나 한국에서 비판도 없이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소사이어티’라는 단어를 일본인들이 처음 접했을 때 그 단어를 번역하는데 한 30년 이상 걸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에 나오는 ‘소사이어티’의 개념이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당시 일본을 포함한 동양에서는 시민사회나 시민혁명에 대해 어떤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락, 무리, 회사’ 등으로 번역을 하다가 마지막에 사회로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단어 하나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오랜 고민의 과정을 거쳤는데, 우리는 어떤 고민도 없이 일본의 번역어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이것은 대부분의 근대적 학술용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필로소피아’라는 단어는 ‘필리아’와 ‘소피아’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필리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사랑을 의미하는 그리스말은 ‘에로스’도 있고 ‘아가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필리아’와 ‘소피아’라는 단어가 결합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가페’의 경우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인데, 예를 들어 신이 인간에게 혹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랑이고, ‘에로스’의 경우 우리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하는 그런, 상대방의 결점이나 문제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랑입니다.

이에 반해서 ‘필리아’는 ‘프렌드십’과 연관되는 것으로 이것이 ‘소피아’와 결합됐다는 것은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에로스’나 ‘아가페’처럼 일방적이거나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친구를 대하듯 상대방이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면 비판도 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교정 하려 하고 그런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짝사랑’은 있어도 ‘짝우정’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에로스’나 ‘아가페’처럼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필리아’는 항상 쌍방향적 노력을 해야 유지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혜를 사랑한다는 철학은 지혜라는 탐구대상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보다는 비판과 검토를 통해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 혼자서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측면이 함축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박 교수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을 통해서 수입됐고,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두 분처럼 외국 유학을 가서 직접 배워오고, 최근에는 굳이 외국 유학을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쉽게 서양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잖아요. 그런 과정 속에서 서 교수님의 말씀처럼 그 동안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수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서양철학을 우리 눈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반도 어느 정도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수입학의 흐름들이 유지되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극복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저는 좀 주목할 지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건 정 교수님도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가 본격적으로 학문으로서 서양철학을 공부한 것은 경성제대의 철학과가 생기면서잖아요.

그 초창기 졸업생들인 박종홍과 신남철, 박치우라는 철학사 삼인방이 만들어지고, 그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세운 어용대학 철학과를 다녔는데도 식민지 현실에 토대를 두고 철학을 하고자 하는 그런 시도들을 했지요.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다른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현실 기반의 철학함을 시도했다는 점은 주목받을 만하다고 판단됩니다. 정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교수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셔서 구체적으로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신남철과 박지우 같은 경우는 월북하는 바람에 연구에서 제외됐죠. 당시 지식인으로서는 오히려 좌파적인 생각이 식민지 상태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으로 느껴졌던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요즘 와서 간혹 논문이 나옵니다. 박종홍은 정말 민족을 사랑하고 조국의 번영을 꿈꿨지만 정권과 손을 잡으면서 군부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결과가 돼서 마음 편하게 연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의 좌우 대립과도 연결이 됩니다. 한쪽에서 긍정해도 다른 한쪽에서 폄하한다는 것입니다.

박종홍의 논리학은 정말 깔끔한 책이었지요. 그런데 국민교육헌장이라든가 당시 정신문화연구원이라든가 하는 사업에 뛰어든 것이 현재 논란이 됩니다. 이런 정치적 편향성은 박치우와 신남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니 어려워지는 겁니다.

특히 박종홍은 스무살 때 ‘조선미술사’를 쓰려다가 석굴암을 묘사하는 데 한계를 느껴 철학을 공부하게 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히려 그 조선미술사는 비슷한 시기지만 일찍 돌아가신 고유섭 선생이 많이 연구를 하죠.”

박 교수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서양철학을 수입하는 과정이 서 교수님 말씀처럼 일방적으로 수입품으로 수입하는 경향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기는 했지만. 그 시기 시기마다 자신이 처해 있던 현실에 근거해서 사양철학을 활용하려고 하는 시도도 없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앞서 얘기한 초창기의 박종홍, 신남철, 박치우가 그랬다면, 1980년대는 군부 정권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좌절을 마르크스 철학에 의지해 극복해보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지요.

서양철학을 엄혹한 현실과 연결 지어서 뭔가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들이 있기는 했는데, 21세기도 20년 이상 지난 지금이야말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서양철학을 우리의 삶과 현실과 연결지어서 다시 재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방안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점에서 서 교수님이 하시고 계신 ‘리더 스피릿’ 관련된 얘기들도 상당히 주목받아야 하고 또 좀 더 확장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관련해 서 교수님께서 조금 더 구체적인 말씀 해 주시겠어요?”서 교수 “고대 그리스에서 ‘소피아’는 흔히 인식으로 번역하는 ‘에피스테메’하고 유사성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인식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전문적인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론을 실제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돼 있고, 또 인식을 행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도덕적인 고려까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따라서 이 세 가지가 갖춰져 있을 때 진정으로 ‘안다’ 혹은 ‘지혜롭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철학과나 윤리교육과가 아니라 자유전공학부에 소속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철학적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리더십의 개념이나 현상에 주목하게 됐지요. 제가 철학개론 시간에도 하는 말이지만 철학 공부의 목표가 여러 철학지식을 획득하는 것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올바른 앎, 즉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자기 인식과 세계관 정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리더십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리더십은 언뜻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해 구성원이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리더십 유형들, 예컨대 카리스마 리더십, 임파워먼트 리더십, 또 요즘 부각되는 서번트 리더십 등 다양한 리더십 유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리더십은 외부의 대상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셀프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셀프 리더십’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리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쇼맨십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리더 역할을 제대고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그런데 바로 ‘셀프 리더십’의 핵심이 철학에서 말하는 자기 인식과 세계관 정립입니다.

또 리더십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대학생들에게는 특정한 유형의 리더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셀프 리더십’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셀프 리더십’ 훈련에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철학이 아닌가 합니다. 즉 철학적인 사고, 철학적인 자기 반성 능력을 기르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 “‘셀프 리더십’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전통사회의 리더와 시민사회의 리더는 그 위상과 역할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민사회의 리더는 리더이면서 곧 시민이기도 하니까요.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1차적으로 자기 인식과 세계관 정립이다. 거기에 특히 서양철학이 상당히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네요.” ▶14일자 10면에 계속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