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미나 기자]서 교수 “제가 리더십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러면 당신이 볼 때 세상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고 가치 있는 리더를 한 사람만 뽑으라고 하면 누구를 뽑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는 너무나 많은 조직들이 있고 그 조직들의 성격이 제각각인데, 천편일률적으로 이것이 최선 내지 최고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위대한 리더로 꼽을 수 있지만, 그 분들은 그 분들이 살았던 시공간과 사회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분들인데, 다른 영역 혹은 다른 세계에서 활동했던 분들과 획일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리더를 생각할 때 어떤 특정한 사람을 선정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더십, 스칼러십, 아너십, 프렌드십 같은 단어의 접미어인 ‘십’(-ship)은 스킬이나 테크닉을 의미하는데, 저는 리더에게 기술이나 기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스피릿’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설립한 연구소의 이름도 ‘리더스피릿연구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에 앞서 리더로서 갖춰야 할 정신을 제대로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리더스피릿’은 무엇인가. ‘리더스피릿’을 리더에게 요구되는 정신 혹은 지도자 정신이라고 단순히 번역할 수도 있지만, ‘리더스피릿’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지금 여기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바, 이른바 ‘시대정신’(Zeitgeist)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새로운 공유비전으로 개념화한 후 그것을 구성원들과 더불어 성취할 수 있는 자세와 실천역량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제대로 갖추는 사람이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소개했던 정치에 대한 규정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베버는 정치란 ‘열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두껍고 단단한 널빤지를 천천히 뚫어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이것이 단지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 혹은 덕목이 아니라, 진정한 리더라면 자신의 분야에서 바로 그런 자세와 노력을 가지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박 교수 “그러니까 서 교수님은 특히 리더의 정신, 즉 ‘리더스피릿’이라는 것에 주목하면서 서양 철학의 여러 지혜들을 끄집어내서 활용하는 그런 대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 교수님은 그 지점에 대해서, 특히 우리가 지금 이 현실 속에서 서양철학을 가져와 연결지으면서 활용해 본다든지 아니면 서양철학을 재해석한다든지 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 교수 “아까 이야기한 박종홍, 신남철, 박치우의 글을 볼 때 현재 연구자와 현격하게 다른 점이 하나가 있어요. 그분들은 정말로 현실에 대해서 문제를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로 철학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철학이든, 마르크스주의든, 하다못해 원효든 자기 문제를 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강단 철학에만 머물지 않고, 그분들에게는 ‘의기’(義氣)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그런 것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옳고 그러든 간에 오늘의 철학자와 가장 다른 점이 바로 그 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 교수님이 아까 베버를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가 말하는 ‘인간의 평균적인 결함을 고려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왜냐하면 박병기 교수님이 난감했던 토론장에서의 방청객은 평균적인 결함을 보였고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풀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이 갈등, 모순, 대치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를 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좌우, 종교적 신념, 시민의 가치가 서로의 발목을 잡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전통 윤리와 서양 윤리의 부딪힘도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습은 공자의 가족중심적인 체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플라톤적인 가족을 뛰어넘는 원리가 시민사회와 함께 들어왔거든요. 아버지를 숨겨주는 아들을 좋게 보는 공자와 그것을 정의롭지 않다고 보는 플라톤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박 교수 “저는 주로 시민교육 쪽에 관심이 있으니까 우리 시민사회가 외적으로는 상당히 팽창을 했고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민주화를 달성해서 외형적으로 충분히 자리를 잡았는데, 그걸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시민윤리라고 하는 최소한의 것들을 시민들이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이 지점과 관련해서 서양철학에서 특히 주목해볼 만한 것은 공화(共和)의 전통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공화를 잘 못해내고 있거든요. 각자는 잘하는데, 공공의 것이나 우리가 함께 나누는 것에 서투른 것이지요.

이 공화를 로마 전통에서 불러낼 수도 있고, 그것을 토대로 시민들 사이에 대화와 토론도 활성화시킬 수 있지요. 자기 주장만 옳다고 하다보면 대화가 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데, 20세기를 상징하는 서양철학자 중 하나인 위르겐 하버마스의 담화윤리 같은 것도 재해석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시민사회의 질과 수준을 높이는데, 서양철학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기대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서양철학에 대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재해석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하겠지요.

지금까지 서양철학이 여러 한계 속에서도 우리들의 지적인 수준도 많이 높여주는 등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계도 갖고 있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한테 서양철학은 어떻게 다가와야 할까, 또는 우리가 서양철학에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라는 큰 주제를 염두에 두시면서 마무리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서 교수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요즘 인문학을 보호학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계속 육성해야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바람직하고 또 계속해서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차원에서는 좋은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보호라는 것이 자신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무엇인가를 해주고 도와주고 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전문적인 영역에 집중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인문학은 보호학문을 넘어서 연명학문이라 불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보호학문이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철학자들 스스로 세상과 어떤 식으로든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제가 본 글에서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도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한국에서 현재 철학 연구자들이 업적평가 등 여러 이유로 SCI급 논문이나 KCI급 논문을 쓰는데 너무 집중하고 있는데,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철학 자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더 깊이 있는 논의와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리더십과 연관해서 어떤 기반 혹은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 철학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년간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경영학자, 행정학자, 또 최근에는 정치학자들이 리더십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고 인문학이나 철학 차원에서 리더십 연구를 한다고 하면 약간 거부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과 조금 친해지고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철학이나 인문학이 같이 협업을 하면 좀 더 뿌리 깊은 학문적 연구가 가능할 것 같다고 솔직히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렇다고 해도 철학자를 포함한 인문학자들도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뿌리이자 근본이고 그래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곧바로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세상에서 인문학자들이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철학이나 인문학이 학문의 뿌리인 것은 확실하지만 이 세상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거든요. 인문학이 뿌리라고 한다면 행정이나 사회과학 이런 것들은 가지나 줄기에 해당되고, 거기서 나오는 최종적인 열매는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기술의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상상력과 사유는 과학기술에 의해 야기된 변화나 발전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기술자들, 공학자들과 대화를 해보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있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하고,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면 매우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경영학자들 혹은 과학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 그런 노력과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 교수 “첫 번째로, 공부가 어려운 건 맞습니다. 특히 서양철학은 언어의 벽에 가려서 돌파해 나가는데 세월을 다 보내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철학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철학자의 언어만을 공부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게 됩니다.

최근 들어 우리도 학문적 능력이 좋아져서 예전에는 소개로 그쳤지만 이제는 거기에 대한 좋고 나쁜 것을 들어내는 비판적인 접근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거기에 너무 소극적이에요. 철학 또는 철학자가 좋을 수 있고 싫을 수 있죠. 그런데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서로가 분명하지 않은 거예요. 좋고 싫은 게 있어야지 선택을 할 거 아니에요. 선택이 되어야 토론이 되고, 토론이 되어야 타자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전공주의를 벗어나야 합니다. 전공주의는 자기가 전공한 것은 무조건 옳다는 태도입니다. 자기가 전공한 사람이 틀릴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고 비판할 수 있어야 오히려 제대로 된 공부일 텐데 우리는 아직도 전공주의에 빠져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 한국 현대 언어 자체가 겉으로는 우리말 같지만 속은 서구화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념이라는 말조차 서양화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양을 공부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양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동양을 너무 몰라요. 동양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서양을 조금은 아는데요. 그래서 대화의 불가가 현실적으로 벌어진다는 게 참 슬픈 일입니다.

재미있게도 서양철학 하신 분들도 퇴임하시고는 동양철학을 공부하시는 겁니다. 좀 일찍 하시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나나 학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세 번째는 형식과 내용으로 나눠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정말 토론해야 합니다. 토론이라는 건 남이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중고등학교에서부터 토론 수업이 너무 없어요. 대학도 마찬가지고요. 토론이 중요한 이유는 아주 쉬워요. 문제를 과거화시키지 않고 현재화시키는 거거든요. 그 속에 자기의 문제를 싣을 수밖에 없거든요. 연애 문제든, 집안 문제든, 경제 문제든 말입니다.

내용적으로는 우리 선배철학자인 박종홍, 신남철, 박치우와 같은 분들의 문제 풀기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저는 그 정신을 선양하고자 참으로 노력합니다. 그분들은 철학을 했어요. 정말로 철학한 것이 느껴져요. 그분들이 자기 말로 자기 문제를 풀려고 했던 그것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이제 저도 그분들을 젊은 사람에게 소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리즈로 출간을 계획하고 있고 최근에 ‘인물세계철학’ 1권이 나왔습니다. 마지막 인물로는 당연히 한국인을 배치합니다.

제 개인적인 시도로는 노자를 여성성으로 푼 지 30년이 됐는데 이제는 이것을 ‘어머니의 철학’으로 남성과 여성을 뛰어넘는 개념으로 정식화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노자와 루소’를 사상적 맥락에서 비교하는 2권의 책을 통해 성선설의 현대적 의미를 규명하려고 했습니다.”

서 교수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까 노자를 여성성 내지는 남성성의 틀에 넣지 말고 사람을 혹은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늘 유지하라는 의미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아까 박 교수님께서 철학이 사회적인 역할, 특히 시민사회의 윤리, 즉 시민교육과 연관된 역할을 할 수 있따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현대사회에서 한 사람이 민주시민으로서, 즉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같은 어떤 지도자가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지배와 피지배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리더의 자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이 마지막으로 집필했던 <법률>의 경우, 지배와 피지배의 능력이 진정한 의미에서 ‘마그네시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정치학>에서 이상사회인 ‘폴리테이아’를 그렇게 구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현대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도 우리가 왜 지배와 피지배, 즉 통치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기간이 끝나거나 역할이 끝나면 돌아와서 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를 참고해서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단편적인 예일뿐이고 현대 사회에서 리더에게 필요한 다양한 덕들 혹은 태도들이 철학적인 사유 속에 무궁무진하게 있으니까 그것들을 잘 활용해서 민주사회에서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을 제시하면, 생산성을 지향하는 경영학자나 혹은 매니지먼트를 강조하는 행정학자들에게도 조금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리더십에 대한 단초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박 교수 “사실 우리가 서양철학을 접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100년도 넘었고, 아까 정 교수님 말씀하셨지만 동양철학자들 보다 서양철학자들을 더 많이 알게 하는 그런 교육을 받아왔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서양철학을 우리 현실에 근거해서 끌어오기보다는 아까 서 교수님 말씀처럼 서양철학 텍스트를 정전으로 받들고 무조건 수입하는 데 계속 급급하다 보니까 제대로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시민의 입장에서 서양철학을 적극적으로 또 주체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철학으로 만드는 그런 노력들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정 교수님 전공하신 동양철학도 여전히 좀 겉도는 면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다음 주제는 ‘동양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연결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면서, 오늘 포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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